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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강남 300

hm 2023. 9. 17. 05:29

골프장 평가가 후하기로 유명한 나로서도 가기 싫은 곳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 강남 300이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가장 가까운 골프장들 중의 하나일 것인데 특히 분당에서라면 금방이다. 처음 가본 기억은 쌩초보 시절이었으나 여름에도 티박스에 매트를 깔아놓았고, 온통 동네 아줌마들로 가득한 첫인상이어서 별로 끌리는 곳은 아니었다. 두번째 방문했을 때에는 눈이 펑펑 내리는 2월이었는데 티박스와 그린에만 눈을 대충 치워놓고는 예약하셨으면 무조건 나가셔야합니다, 우리는 못 나간다 싸우다가 결국 출발했으나 카트가 오르막을 올라가지 못하는 통에 1번 홀에서 되돌아왔던 황당한 기억. 오래된 티가 나는 클럽하우스는 청소라도 열심히 하면 좋으련만 일단 더럽고 칙칙하다. 아무튼 김명길 씨의 설계로 1987년에 개장했다는 강남300은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골퍼들에게 좋은 평을 듣는 곳은 아니어서 이래저래 내키지 않는 골프장이었지만 누가 여기를 부킹했다고, 회원가로 친다고 하길래 사양하지 않았다. 가깝다고는 해도 강남 300에 가려면 분당을 지나 오포읍 태재고개에서 좁은 길로 빠져서도 한참을 가야했으니 사실 지도로 보는 것처럼 가까운 것도 아니다. 주말 새벽이라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지만 제대로 비회원가를 지불한다면 카트와 캐디피까지 하면 제정신에 강남 300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클럽하우스 식당은 물론이고 스타트 광장에는 인파가 가득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나중에 은퇴하면 골프비용이 싼 나라에 가서 살리라 그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가는데 그래도 얼추 감당할 수입에 시간, 그리고 나를 불러주는 좋은 동반자들이 있으니 행복한 편이다. (캐디를 빼고) 무뚝뚝한 직원들이나 그에 반응해서인지 몰라도 하나같이 무례해보이는 다른 내장객들을 보면 우리나라 오래된 회원제의 전형이다 싶었지만 그 와중에도 강남 300은 전반적으로 다 후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갔더니 약간은 클럽하우스 리노베이션을 했는지 흉물이던 (옥으로 만들었다던가 했던) 거북선이 사라졌고, 화장실도 좀 밝아졌다. 이제 막 먼동이 트는 시각에 첫 홀로 가서 시작하는데 티샷을 하려고 보니 처음부터 매트에서 친다. 강남 300은 첫 홀과 마지막 홀들이 (그러니까 1, 9, 10, 18번) 모두 파 5로 되어있다. 쉼없이 돌아가는 골프장이라 잔디의 상태도 별로였지만 페어웨이는 그럭저럭, 역시나 그린은 이리저리 튀면서 느렸다. 강남 300에 대한 호불호는 제껴두고 9월의 주말에 치는 골프는 어디라도 불만이 생길 리가 없으며, 공까지 그럭저럭 맞아주면 행복해진다. 뻔한 홀들의 연속이 아니라 도그렉 홀들이 많았고, 경사도 적당하게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티박스마다 맞아주는 고양이들도 강남 300의 명물이다. 거리가 짧은 편이 아니었어도 페어웨이가 넓직하고 평평해서 계속 파를 잡으며 (나는 티샷이 죽지만 않으면 대개 파나 보기를 한다) 전진했는데 의외로 재미있네? 내가 잘 공략한 거로구나 뿌듯했던 홀들도 몇몇 있었으니 첫번째 버디가 나온 9번과 이어지는 10번에서 둘다 어렵지 않게 쓰리온에 버디를 했다.

넓직하고 평평한 페어웨이라 부담이 적은데 그린으로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주변에 장애물이 별로 없어서 낭패에 빠질 일은 적었다. 이래서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도 큰 실수없이 좋은 스코어를 냈다)  미국에서라면 동네의 이십몇불짜리 퍼블릭이다. 그런데 여기는 절대 싼 가격이 아니다. 3부제로 쉼없이 돌아가는 탓에 잔디의 상태도 별로다. 어째 불만이 가득한 리뷰같지만 아무튼 공이 잘 맞았고, 18홀 내내 즐거웠으니 골프가 레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골프장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날은 회원가로 쳤기에 불만도 덜했으며, 샤워장 입구에 정리없이 던져져있던 슬리퍼들도 그러려니 했다. 몇년만에 갔더니 로비의 거북선이 없어진 것 밀고도 골프텔인지 별장인지 (솔직히 처음 보고는 캐디에게 저기 혹시 교도소인가요? 물어봤다) 지어놓고 분양하고 있었는데 꽤나 비싸다고 한다. 다들 욕하면서도 강남 300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서울 근처라는 입지 말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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