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s at Terranea, Rancho Palos Verdes, CA

예전같으면 파 3 아홉개로 이루어진 9홀 코스를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워낙 평이 좋은 곳이어서 한번 가보기로 했다. 평일 오전임에도 카트없이 걷는 비용으로 인당 60불이다. Terranea 리조트를 이번에 찾아보니까 십년쯤 전에 태평양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세워진 고급 호텔인 모양이고, 여기에 딸린 파 3 골프장을 Todd Eckenrode 설계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긴 홀인 3번과 8번이 170 야드 정도니까 우드류와 롱아이언을 차에 놔두고는 클럽하우스로 걸어갔다. 티타임을 예약했어도 리조트로 들어가려면 20불 주차비를 내야한다고 하여 살짝 떨어진 해변가 트레일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다.

Ranch Palos Verdes라는 부자동네에는 비회원 출입이 가능한 골프장이 셋 있다. 이날 오후에 방문할 Trump National LA가 있고, 비교적 저렴한 (그러나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인) LA 카운티가 주인인 퍼블릭 Los Verdes, 그리고 9홀 코스인 여기다. 보통 파 3 코스를 간다고 하면 숏게임 연습이나 하자며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Links at Terranea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태평양과 카탈리나 섬을 거의 모든 홀에서 바라보며 친다고 하니까 비싼 가격도 참을만했다. 클럽하우스부터 하이엔드 리조트 느낌이 들었고, 거기서부터 태평양을 내려다본다. 드라이빙 레인지는 물론 없었으나 건물 내부에 스크린 타석이 설치되어있다. 파 3가 9개니까 거리는 100야드에서 170야드 정도. 대개의 정규홀 골프장들도 파 3 홀을 시그너처로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모든 홀이 다 근사했다. 걷는 골프장이니까 스탠드백에 아이언과 웨지, 퍼터 정도만 넣었고, 공도 3개만 넣고 나머지는 차에 놔뒀다. 그런데 가끔 파 3 코스를 와보면 느끼지만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파 3인 것 같다. 한번의 실수로 보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인데 여기는 커다란 그린과 곳곳에 배치된 벙커 등을 더 어렵게 느껴졌지만 티박스에서, 그리고 그린에서 바라보는 경치만으로도 대단하다. 공이 그린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페어웨이 언듈레이션으로 또 어려운 칩샷이 필요해진다. 물론 리조트에서 만든 파 3 코스라서 누구라도 즐겁게 플레이할 것이다.

코스만 놓고 본다면 오후에 플레이한 트럼프와 비교하기는 좀 그렇다. 비가 살짝 내렸다가 그쳐서 그랬는지 태평양의 경치나 코스의 즐거움은 역시 18홀 정규코스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연습이나 하자며 싼 가격을 치르고 가는 파 3 골프장과는 비교불가. 우리 말고는 리조트 투숙객이거나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코스에 신경쓸 겨를도 없이 미스샷을 보상해보겠다고 공치기에만 급급하다보면 골프가 주는 즐거움을 잊기 쉬운 법이다. 조용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며 파 3 홀들을 천천히 걸으니까 한동안 잊고있었던 골프의 즐거움, 내가 이 운동을 대하던 태도에도 생각이 미친다. 나는 Terranea에서 이날 9홀 모두 파를 해서 이븐파 27타로 끝냈는데 (드라이버 안치니까 성적이 좋음) 스코어와 상관없이 끝나고 나니 조금 더 치고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프랙티스 장소로 가서 퍼팅, 칩샷, 벙커샷 등을 한시간 정도 연습했다. 하도 자주 골프장에 나가다보니까 18홀이 끝나도 아쉽다거나 연습을 하고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최근에는 별로 들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절실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