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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즈베스트 청라에 대한 내 느낌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매립지의 평평한 땅에다가 전세계 Jack Nicklaus 설계의 골프장에서 시그너처 홀들만을 모아놓았다는, 다시 말해서 카피 골프장이고, 롯데가 운영하는 27홀 코스다. 처음 가본 것이 2013년인가 그랬고, 이후에도 가끔 갔는데 인천공항에서 저녁에 출국하는 경우 가는 길에 골프를 한번 치고 개운한 느낌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지 좋아서 자주 간 것은 분명 아니었다. 홀마다 여기는 어디어디 유명한 코스의 몇번째 홀을 옮겨왔습니다 설명이 붙어있지만 대단한 감흥도 없었고, 그저 평지에 나무도 없어서 더운 골프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퍼블릭 주제에 가격은 여느 회원제 뺨치게 비쌌다. 매년 한국여자오픈을 개최한다지만 내가 갔던 시기에는 언제나 화이트와 레드티만 오픈했던 당황스런 운영, 넓직한 페어웨이임에도 저만치 잔디밭 중간에다가 흰 말뚝을 박아놓고는 공이 그리로 가면 오비입니다 공을 집어오셔서 오비티로 가세요 그런 얘기를 듣고 황당했던 기억도 있다. 복잡한 로비에는 앉아있을 곳이 전무하고, 와이파이도 없다.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그 돈을 내고 왜 거기를 가요? 이런 얘기도 종종 하게되는 코스다.

한편, 여기는 잘 관리된 양잔디에 비싼 가격을 들여서라도 KLPGA 한국오픈이 열리는 코스에서 쳐보겠다는 이들도 바글거리는 곳이다. 잭니클라우스 코스를 많이도 돌아봤기에 그의 취향에 익숙해지고 보면 일단 티박스에서는 편안해보이고, 그린을 노리자면 함정이 많은 그런 식이어서 재미있다. 그린쪽으로 다가가보면 벙커나 해저드가 그린의 절반쯤을 방어하고 있어서 도전할래? 아니면 안전하게 돌아갈래? 나의 의지를 묻는다. 확실히 내 실력이 예전보다 좋아졌기 때문에 다시 코스를 평가해보고픈 생각이 생겼는데 주말 오전에 그린피만 26만원이면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지만 우겨서 간다. 이 블로그가 전문적인 코스 리뷰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무슨 파워블로거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골프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을 적을 뿐인데 세상 이치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골프장이 맨땅이냐 잔디가 좋으냐 정도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겠으나 코스의 진정한 맛은 설계자가 의도한 바를 어느정도는 따라갈 수준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유럽/미국/오스트랄아시아 코스의 27홀 중에는 이번에는 USA/Australasia의 18홀을 돌기로 했다. 첫 홀이 USA 코스에서 가장 평이한 TPC Michigan 9번이다. 원래는 아름다왔을 것이나 여기서는 (미시건의 산세를 매립지로 옮겨온 것이므로) 전혀 인상적이지 않다. 황량한 배경에 푸른 잔디일 뿐이다. 골프코스의 아름다움은 주변 풍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도 티샷은 편안하고, 정확한 거리와 방향이 필요한 어프로치라는, 잭니클라우스 코스의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공을 생각한 자리 근처로 보낼 실력이 되면 (그래봤자 화이트티 플레이어지만) 설계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대충 아아 여기서 저기로 쳤어야하는구나 그런 식이다. 아무튼 페어웨이를 지키고, 어프로치를 그린에 살짝 미치지 못할 정도로 (핀보다 아래의 그린이면 최고) 쳐주면 보기는 한다. 대회가 끝난 후라 그런가 잔디의 상태는 좋았는데 3.2미터 그린스피드라는 그린은 생각만큼 빠르게 구르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10 피트인 셈인데 이것도 좀 뻥?). 딱히 못친 공이 없는데 스코어는 별로,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즐거운 골프인데 역시 주변의 황량함과 저멀리 아파트만 보이는 경치는 별로다. 그리고 설계자가 18홀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카피" 골프장) 시그너처라고 부를만한 홀들이 딱히 없다. 그럭저럭 전진하다가 슬슬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그러다가 우와 근사하구나 그런 식의 멋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압권은 계산할 때였는데 얼마입니다, 네 넷으로 나눠주세요 했더니 그게 아니라 인당 ...원입니다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송도의 잭니클라우스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값을 받는 것일까?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부킹에 그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돈을 치르는 우리들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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