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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양평 TPC

hm 2020. 7. 31. 07:44

TPC (Tournament Players Club) 이라는 명칭을 이렇게 막 가져다붙여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골프장은 미국의 pga 투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이다 (TPC는 미국 pga 투어의 공식 상표이고, 혹시나 해서 tpc.com에 들어가봐도 여기는 나와있지도 않다). 아무튼 (간도 크게 남의 등록상표를 멋대로 가져다붙일 정도로) 배짱이 있으니 대충 만들지는 않았을테고, klpga 대회를 유치하기도 했으니 영 엉터리는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여러 골프장들을 설계한 바 있는 사토 겐타로 (佐藤謙太郎) 씨가 설계한, 솔라/스텔라/루나 각 9홀씩으로 이루어진 회원제 골프장인데 나는 2014년 9월에 스텔라/솔라 코스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작명이다. 솔라와 스텔라는 결국 똑같이 "태양" 코스 아닌가?) 돌아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를 많이 다녀보지 못해 양평이라는 동네가 어디쯤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아는 게 양평해장국 뿐이었으니...) 집에서 출발해서 네비가 일러주는 대로 가면 길이 막히지 않아도 워낙 깊은 산속이어서 한시간 반은 걸렸으니까 꽤 먼 곳이다. 페어웨이는 조선잔디고 레이아웃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산악지형 코스였다. 그래도 전문 설계자가 만들어서인지 tpc라는 거창한 이름을 (훔쳐다가?) 붙여서인지 터무니없다거나 그런 홀은 보이지 않았고, 경치도 이뻤다. 저런 식으로 산기슭에다가 만들어놓긴 했어도 여느 (도전적인 코스라고 광고하는) 어렵기만 하고 다 그 홀이 그 홀 같은, 그래서 다시 와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그런 곳하고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페어웨이가 넓직하고 다소 굴곡은 있으나 잘 친 공은 좋은 자리로 간다 (대신 잘못 쳤어도 운이 좋아 바위를 맞고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식의 행운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린피도 저렴하고 경치도 괜찮았어서 언제 다시 가봐야지 했는데 새로 난 고속도로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이제 서울에서도 한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골프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몇년째 골프치라고 꼬셔왔던 후배를 (드디어) 데리고 모처럼 양평까지 간다. 바로 몇주전에 더스타휴를 다녀왔지만 거기는 국도로 가야하는 위치고, 양평 TPC는 광주원주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5 km 거리다. 이번에는 솔라/루나 코스로 부킹했는데 평일 2부의 그린피가 인당 12만원이니 (요즘같은 호황기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돈을 절약할 작정으로 점심은 김밥을 사가지고 차에서 먹으면서 갔고, 9홀 끝나고 먹을 음식과 음료도 싸갔다. 우리나라 골프장에서 이런 행위를 허락할 리가 없지만 양평 TPC에서는 다들 그런다고 누가 그랬고, 실제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예전에 다녀온 기억으로는 거의 관리없이 버려둔 수준의 코스였는데 이런 곳을 "TPC라는 이름은 토너먼트를 하는 골프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기가 유일하고요, 전세계적으로면 열몇개밖에 없대요" 이런 사기를 믿고 오시는 분들이 불쌍했지만 모든 것을 떠나서 경치만큼은 좋았던 것이다. 우리가 출발한 2시반이 2부 마지막 팀이었고, 이후로도 스무스한 진행이다. 기대 이상으로 경치가 좋았고, 소문에 비해 잔디의 상태도 괜찮았다. 유일하게 눈에 거슬린 부분은 티박스인데 장마철이라 풀이 웃자란 것은 어쩔 수 없었을테고, 그래도 매트를 깔아놓지 않은 게 어디냐 싶었다. 중간에 턴이 바뀔 때도 15분 정도만 쉬고 바로 나갔고, 후반의 루나 코스는 좀더 길고 어려웠지만 아름다운 양평의 산세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날이었다. 벙커가 시각적으로 무시무시해보이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탈출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같은 골프장이라도 컨디션에 따라, 그리고 사계절 언제 오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이래서 골프는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 이제 내 소감도 완전히 바뀌어서 누가 양평 TPC에 간다고 하면 나쁘지 않아 꼭 한번은 다녀와봐 (그치만 TPC라는 명칭에 속지는 말어)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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