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일요일에는 어디든 비싸지만 그나마 평점과 가격을 고려해서 정한 골프장이 시프레 (シプレ) 컨트리클럽이다. 일본어로 시프레라고 발음하는데 구글맵에서는 Shipure라고 찾아져서 쉬퓨어가 대체 뭘까 챗 GPT에게 물어보니 르완다어로 Cypress 나무를 의미합니다 대답이 나와서 으응? 했다. 일본어로는 히노키라고 부르는 편백나무 cypress는 예로부터 고급 한지의 소재로 쓰였고, 쭉쭉 뻗은 모습이 아름답기에 이 나무를 많이 심어놓았겠거니 했고, 골프장에 도착해서 보니 곳곳에 Cyprès (또는 CCC)라고 알파벳으로 적혀있기도 했다. 아무튼 홈페이지의 소개를 보면, 다이와 하우스 (다이와는 종이 회사로 유명하지만 이름으로 짐작컨데 건설사가 주인인 모양이다) 그룹이 소유한 럭셔리 컨트리클럽이라고 나오는데 일요일이긴 하더라도 인당 18,000엔을 넘는 그린피가 오히려 기대감을 주었다 (다만 어제의 Seta 골프클럽에서와 비슷한 가격이라서 역시 실망할 수도 있겠다). 미우라 카즈미 (三浦一美) 씨가 설계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 분은 60, 70년대에 명성을 떨치던 분이라고 하나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이름이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차분한 분위기의 클럽하우스에 도착해서는 라커에 먼저 들렀는데 가구들이 낡았긴 해도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캐주얼한 분위기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차분한 편이었던 것이, 정장으로 차려입고 내장하시는 골퍼들도 대개 나이가 지긋하신 회원들이라 그런 느낌이 든다. 1번 홀로 나가보니 편백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고, 저멀리 산세가 아름다운 페어웨이 양측으로는 소나무가 즐비해서 가평베네스트나 이스트밸리 느낌이 (이정도면 나로서는 최고의 찬사지만 아무튼 편백나무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음) 났다. 풍광과 함께 코스의 관리상태도 훌륭해서 이날은 만족스러운 라운드였다. 페어웨이가 아주 넓지는 않아도 넉넉했고, 굴곡도 많지 않게 편안했다. 잘 관리된 그린은 빠르면서 자잘한 브레이크가 많다. 나는 다이나믹한 레이아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가 다녀본 일본 골프장들은 이렇게 장타보다 코스 매니지먼트가 중요한 디자인이 흔하다) 여기처럼 티박스에서부터 그린이 잘 보이면서 솔직한 설계를 더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시프레의 특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홀이 5번과 6번이었는데 티샷은 편안해보였지만 막상 랜딩존이 미묘하게 어려워서 공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그린 공략이 쉬워지기도 어렵기도 했다. 핀을 노리기보다는 안전한 지역으로 어프로치하는 편이 낫기 때문에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설계자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이다.
도그렉도 물론 나온다. 가령 7번처럼 장타자라면 코너를 넘기고싶은 유혹이 들게 만들어진 홀도 있는데 나야 당연히 안전하게 돌아가게 치지만 나도 티샷 비거리가 20미터만 더 간다면 공격적으로 쳤을 것이다. 사실, 아마추어의 입장에서는 안전한 매니지먼트를 했다고 해서 모든 샷이 생각대로 맞아주는 것은 아니라서 한번쯤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아드레날린이 쏟아지게 힘껏 쳐보는 식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무튼 전반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일본의 회원제에서의 주말답지 않게 달랑 30분의 시간만 주어져서 우리처럼 빨리 치자는 이들에게야 물론 좋았지만 좀 특이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채 3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여서 기본 액수인 (그린피에 포함) 소바를 먹었는데 그동안 내가 먹었던 메밀국수와 좀 다르게 거친 식감이면서 상당히 맛있었다.
후반도 비교적 편안하게 시작했지만 12번이 시프레의 철학을 가장 제대로 보여주는 홀이라고 본다. 아름답게 잘 정돈된 페어웨이로 티샷하니까 압박감은 별로 없었는데 막상 세컨샷 지점에 그린을 바라보면 애매한 거리와 함께 벙커들이 눈에 들어와서 공격적으로 핀을 노릴까 안전하게 올려서 퍼팅으로 승부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15번부터 18번에서도 일본 명문 골프장 특유의 피니시 감성이 있다. 경관이 아름다우면서 클럽하우스를 향해 시야가 열려있어서 (비록 편백나무는 보지 못했으나) 압도적인 개성보다는 완성도가 높은 코스라고 생각하며 라운드를 마쳤다. 나에게 일본 나라현에서의 첫번째 경험이었는데 간사이공항으로 들어와서 굳이 한국인들 천지인 오사카, 고베 등지를 고집하기보다는 이쪽도 괜찮아보였다. 라운드를 마치고나니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날씨까지 고려하여 점심시간을 짧게 주었던 것일까? 과연 일본인들은 철저하구나 식으로 생각하며 만족스런 하루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