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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글렌로스

hm 2022. 7. 20. 05:48

(촌스럽기 그지없던 이름인) 용인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이름을 막 바꾸었을 시절인 1999년에 Robert Trent Jones 2세의 설계로 개장한 글렌로스 골프클럽은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9홀 두바퀴 퍼블릭이다. 그래도 여기는 전반과 후반이 전혀 다른 코스처럼 느껴지게 만들어놔서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각 홀들이 2티 2그린 시스템이며, 18홀 기준으로 하면 6,500 야드나 되니까 짧은 골프장도 아니다. 9홀 퍼블릭 치고는 상당히 비싸서 주말의 18홀 그린피가 웬만한 회원제 뺨치는데 하긴 요새는 퍼블릭도 워낙 가격을 올려버려서 그러려니 한다 (회원대우로 친 날이라 돈은 크게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멀지는 않지만 주말 오후라면 교통체증이 예상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출발해야 했고, 에버랜드를 지나 호암미술관 방향으로 가면 사람들 많이 오지 말라는 수작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도 들게 허름한 클럽하우스가 나온다. 물론 코스는 7월 초순이니까 최고로 아름답고 잔디상태도 좋을 시기다. 잘 관리된 페어웨이를 보면 여느 정규홀 골프장에 못지 않다. 러프는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도 짧게 깎여있어서 절대 피해야할 곳은 아니었고, 벙커에도 몇번 들어가봤지만 적절한 위치에 잘 배치해놨구나 싶어 불만은 없다. RTJ 코스를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그만의 독특한 어려움이 있는데 글렌로스는 좀 편안하게 만든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것은 그린인데 투그린 시스템이라 각각이 크지는 않아도 매우 빠르고 본대로 공을 잘 굴려준다.

위에도 적었지만 참으로 신기한 것이 같은 홀을 두번씩 도는 시스템임에도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전략으로 공략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홀인 9번과 18번 홀은 한번은 540 야드의 똑바른 파 5인데 다른 한번은 490 야드 도그렉에 그린 옆에는 커다란 워터해저드가 온그린을 방해하는 식이다 (9번을 칠 때에는 거기에 물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2번과 11번도 하나는 450 야드나 되는 파 4 홀인데 다른 하나는 380 야드지만 투온이 힘들게 해놓았다. 페어웨이를 X자 형태로 가로지르고, 두개의 그린이 멀찍이 떨어져있으면서 형태나 기울기가 완전히 다른, 이런 식이라면 완전한 18홀 코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더운 여름이었고, 글렌로스의 상징인 공작새들도 부지런히들 돌아다닌다. 산을 깎아서 만들었을텐데 코스 내부는 거의 고저차가 없게 평평하다. 그나마 파 3 홀들은 그린을 내려다보게 만들어져서 저멀리 산세를 감상할 수 있지만 페어웨이 자체는 평평하다. 이래야 아마 같은 홀을 다른 방향에서 공략하도록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실은 자연 그대로 만들어놓은, 좀 거친 마감의 골프장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만들어놓은 티가 나는 모습도 좋다. 다만 가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인 것이, 정가를 지불한 경우라면 9홀 두바퀴에 비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코스는 만족스럽지만 역시 퍼블릭답게 식당도 작고 라커룸도 작다. 욕실도 작지만 자그마한 탕은 갖춰져 있었다. 이 날은 젊었던 시절, 힘든 시기를 함께했던 동료들과의 라운드라 내내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누가 내게 주말마다 골프나 치며 살 거라고 얘기했다면 말도 안된다고 손을 내저였을 것이니 인생에서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되는 것이다. 골프 덕택에 중년의 슬럼프를 그럭저럭 넘겨가는 지도 모른다. 글렌로스는 거리상으로는 서울에서 가깝지만 에버랜드를 빙 돌아서 막히는 영동고속도로를 통하기 때문에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귀가길이 막힐 수 있다. 결국 분당쪽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래도 막히는 길에서 졸음을 쫓느라 고생이었다. 좋은 시절의 주말이니 집을 나서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더위도 대단한 날이어서 심지어는 한여름에는 골프를 좀 금지시켜주면 어떨까 생각도 들었다. 이미 경기도 일대의 동네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골프장이 많아졌고,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9홀 코스인 글렌로스를 굳이 찝어서 추천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폐쇄적이던 회원제 정규홀들도 이제는 부킹사이트 등을 통해 웬만하면 다 쉽게 부킹이 되기 때문에 신비롭고 폐쇄적인 매력에 끌려 조바심을 낼 곳도 아니다. 그래도, 어쩌면 내 인생에서 글렌로스를 다시 방문할 일이 얼마나 자주일지 모르지만, 혹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없이 길을 나설 가치가 있는 골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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