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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옆에 위치한 72홀 대단위 퍼블릭 골프장인 클럽72. 이름처럼 4개의 18홀 코스가 있는데 나는 스카이 72로 개장하던 십여년 전부터 모든 코스를, 그것도 여러번씩 가보았지만 실은 클럽하우스와 이름을 공유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스타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대로 각각에 대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클럽72의 네 코스는 설계자도 각각 달랐는데 노준택 씨가 설계한 하늘과 레이크 코스가 있고, 잭니클라우스 디자인의 Tom Peck이 만든 오션 코스, Robin Nelson이 관여한 클래식 코스가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 수많은 리조트를 디자인한 Nelson & Haworth 사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클래식 코스는 전형적인 리조트 코스가 되었고, 20세기 중반의 미국 골프설계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라 이름도 이렇게 지은 것이 아닐까 (근거는 없지만 그저 내 멋대로) 생각된다.
하늘이나 오션 코스가 조금 더 비싸고, 대회도 많이 열리긴 했는데 그래도 코스가 좋으니까 더 자주 갔었고, 레이크나 클래식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어쩌다가만 가보았는데 주인이 원더클럽으로 바뀐 이후에는 관리에 열심이라고 해서 재방문할 생각이 들었다. 이쪽 코스들에는 조명시설이 있어서 야간 골프가 가능한 탓에 사람들의 손을 상대적으로 많이 탔을텐데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전혀 관리를 안하네 그냥 황무지로 변했네 말이 많았으나 이제는 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서기라서 그런가 (스카이 72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저렴한 가격에 좋은 티타임을 잡을 수도 있었다. 앞에서 클래식코스를 리조트 코스라고 했는데 전장이 길지 않고 페어웨이도 평지에 넓직하다. 러프로 약간 벗어나더라도 세컨샷에는 큰 지장은 없는데 그렇다고 쉽고 스코어 잘나오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어서 해저드와 그린으로 방어벽을 쳐놓은 그린을 공략하려면 조금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도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점수도 잘 나오는 그런 설계다.
오랜만에 갔더니 (특히 전반의 홀들이) 리노베이션을 했는지 뭔가 많이 달라졌다. (파 4였던) 1번 홀이 롱홀로 변했고, 그린도 몇몇 홀에서 투그린으로 조성하는 등 상당히 큰 변화인데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은 아닐 것이, golfshot 앱의 야디지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카트에 탑재된 시스템도 스마트스코어로 바뀌었는데 위에서 보면 벙커도 무시무시하고 근사해보이지만 평지 코스라서 티박스에서 바라보면 거기가 거기같다. 스카이 72의 (이제는 다른 퍼블릭 골프장에서도 많이 따라하는) 무료 아이스크림 서비스는 여전했는데 20년간 그대로인 듯한 카트는 요즘 기준으로는 좁고 불편했다. 클럽하우스도 낡아져서 가뜩이나 좁았던 느낌이 더 심해졌다. 그래도 이날은 바람도 적게 불고 화창해서 그랬는지 공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맞아준다. 어둠이 내리는 올림픽대로를 (조수석에 앉아) 타고 돌아오면서 이 골프장이 살아남는 비결에 대해 생각을 했다. 길이 잘 뚫려있다고는 해도 강남에서라면 한시간 반은 걸리지 그린피는 웬만한 회원제 수준이지 매립지 코스라 (산과 계곡에 익숙한 우리네 눈에는) 심심해보이지 뭐 그렇게 치면 좋은 구석이 없다. 그래도 스카이 72 시절부터도 여기를 가자고 누가 그러면 어 좋지 하며 선뜻 몸이 움직여졌고, 크게 실망하거나 돈이 아까왔던 적은 없으니 뭔가 이 골프장은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부담스러웠던 인천공항 고속도로의 통행료도 지금은 많이 내렸다. 돌이켜보면, 2002년에 스카이 72가 퍼블릭으로 개장하면서 우리나라 골프문화를 바꿔놓은 것이 사실이지만 가격도 올린 계기였다. 당시, 퍼블릭인데 뭐가 이렇게 비싸냐 그런 질문에 그들이 답하기로는 땅의 임대기간이 십년인지 2십년인지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투자비용을 회수해야하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 대신에 이제까지 국내에 없었던 명품 퍼블릭의 서비스를 보여주겠다 뭐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투자원금을 회수하고도 약속대로 땅을 돌려주던지 요금을 내리던지 했어야하는데 한동안 분쟁으로 시끄러웠던 사연을 다들 아실 것이다. 새로운 주인인 원더클럽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주었으면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활주로로 변할 운명이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