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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겨울철 골프에 썩 좋은 동네가 아니지만 매년 이맘때쯤 갈 일이 생긴다. Lake Chabot 골프클럽은 SFO 공항에서 바다를 건너 베이 지역으로 가야하는, 오클랜드 시내의 골프장인데 저렴한 가격에 비해 평이 좋은 편이다. 어차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치는 라운드는 몸풀기 용도라서 좋은 곳을 갈 이유는 없으나 이번에는 좀 속쓰린 경험이 되겠는데... 평일의 정가가 홈페이지에 35불이라고 나와있으나 나는 Groupgolfer 바우처를 인당 25불에 구입해놓은 참이었다. 하지만 막상 코스에 도착해서 보니 카트포함 21불씩을 받고 있었으니 나름 스마트컨슈머라고 자부하던 꼴이 우습게 되었다. 정가보다 5천원 정도를 더 비싸게 치는 것이 18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무튼 Lake Chabot 골프장은 William Lock과 Willie Watson이 설계해서 1923년에 개장한 18홀 정규 코스에다가 (여기가 우리가 친 골프코스임) 9홀짜리 파 3 코스까지 딸려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는 진입로가 희안하다. 주택가를 벗어나 골프장에 진입하여 클럽하우스까지 가려면 여러 홀들의 페어웨이를 가로지르게 되는데 카트도로도 아니고 정말로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도로가 깔려있었다. 이래서는 차량도, 공을 치는 골퍼들도 불안하다. 페어웨이 중간쯤에 이제 공을 쳐도됩니다 신호등이라도 만들어야할 판이다. 운전하고 지나가는 입장에서도 차 지붕위로 공이 날아가는 상황이 영 편하지 않았다. 전반의 홀들은 이렇게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를 넘어 샷을 하고,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다음 샷 장소로 이동한다. 티샷은 아래로, 어프로치는 도그렉이나 포대그린을 향하게 된다. 못사는 동네에 하나씩 있을법한 평범한 골프장은 분명 아니었다.
전반에서 가장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홀은 9번이었다. 블루티에서 182야드라고 하는 내리막 파 3 홀인데 그린은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있지만 티박스에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거리도, 방향도 가늠할 수 없어서 그저 쳐놓고 가보는 수밖에 없다. 화이트티에서는 그린의 일부가 보이기는 하지만 티샷의 방향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클럽모우에도 비슷한 홀이 하나 있지만 거기는 캐디가 거리를 알려주고, 여기는 그저 상상력으로 쳐야한다. 이후 후반에는 전형적인 타겟골프가 펼쳐지니까 여기가 백년된 골프장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당시의 레이아웃 그대로인지 모르겠지만 카트도 없던 시절에는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최고의 홀은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18번이었다. 길지 않은 코스지만 18번은 667 야드로 플레이하는 파 6 홀이다. 티박스에서 바라본 페어웨이는 무척 좁아보이는데다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심한 경사였다. 어찌어찌 티샷이 페어웨이에 놓이면 거기서부터 좌측으로 90도 꺾인다. 세컨샷 이후는 심한 내리막이라 카트도로도 롬바르드 스트리트처럼 지그재그로 위험하게 내려간다. 내리막은 100 야드 말뚝이 있는 지점까지 이어지고, 거기서의 어프로치는 다시 높게 솟아있는 그린을 향한다. 이 홀이 파 6일 이유는 딱히 없어보였으나 쓰리온은 프로들이나 가능하게 생겼으니 아주 틀린 세팅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여기서 세번만에 온그린을 하자면 티샷이 엄청 멀리, (오른손잡이의 경우) 드로우가 잘 걸리고, 세컨샷이 운좋게 내리막을 타서 그린 근처까지 굴러가준다면 이글도 노려볼 수 있겠다. 아무튼 파 6에서 양파라니 이게 무슨 낭패냐 껄껄 웃으며 우리는 라운드를 마쳤다.
기대했던 이상으로 좋은 코스였고, 그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대충 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돈 몇푼에 전전긍긍하는 인생이라 25불에 이정도 수준의 골프장을 경험했으니 만족도가 더 올라간다. 비슷한 수준을 가령 40불 이상 줬다면 느낌이 꽤나 달랐을 것도 같다. 라운드 초반부터 흩뿌리던 비는 견딜만했는데 해가 기울면서 급격히 추워졌다. 숙소로 가기 전에 저녁을 먹을라는데 동네가 (미국에서도 위험하기로는 손꼽는) 오클랜드라 운전도 식당에 주차하기에도 조심스럽다. 차로 지나가다가 데니스가 하나 보이길래 주차하고 들어갔는데 보통 IHOP이나 데니스같은 미국의 대중 레스토랑은 가격적으로나 맛으로나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이쪽 동네는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분위기였다. 미국의 액션영화에서 보면 모든 범죄가 시작하는 곳이 이런 식의 식당인데 주변에서 총격전이라도 벌어지기 전에 빨리 나가자는 심정으로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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