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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숙소는 산호세 근방이라 그보다 아랫쪽 코스들을 섭렵하고자 했다. 기왕이면 몬터레이까지 가보면 좋겠지만 페블비치같은 골프장이 아직 절실하지 않은 수준이라 100불이 내게는 18홀에 지불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오전에 San Juan Oaks에서의 만족스런 라운드를 마치고 들르는 길로이라는 동네는 샌프란시스코 주변에 달랑 두군데인 프리미엄 아울렛 중 하나가 있는 동네인데 산호세 지역에서는 차로 30분 정도 내려간다. Eagle Ridge의 설계자가 누구냐하면 바로 Ronald Fream과 David Dale이니 나인브릿지의 퍼블릭 버젼쯤을 기대하면 되려나 농담을 나누며 떠나는데 끝나고 아울렛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고 돌아오면 딱일 위치다. 카트를 포함하면 인당 $55를 냈으니 비교적 비싼 골프장인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겠거니 기대를 안고 티박스로 간다. 여기도 대규모 주택가에 딸린 코스인데 집들이 꽤나 고급스럽고 좋아보여서 골프장 관리도 열심일 것 같았다.
첫 홀에서 코스를 바라보니 과연 나인브릿지나 아시아나 cc가 떠오르게 생겼다. 울퉁불퉁한 페어웨이에 엄청나게 커다란 그린. 멀리서 바라보면 드라마틱하지만 골프치는 입장에서는 고생길이다. 그러나 San Juan Oaks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전반은 웜업이고, 후반 나인이 진짜배기였다...ㅠㅠ 실은 처음 7개의 홀들은 그럭저럭 무난했는데 8번과 9번이 험난한 후반 라운드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홀들 모두 길면서도 온갖 트러블 상황을 전부 경험하게 만들어놓았다. 물론 한국에서야 이런 식의 코스가 워낙 흔하니까 그저 그런가보다, 우리도 한국식으로 양파까지만 셉시다 이러면서 전반을 마쳤다.
13번이 내 생각에는 가장 어려웠던 파 3였는데 그저 길고 (200미터) 까마득한 오르막이어서 그랬다. 샷의 비거리도 실력이겠으나 드라이버로도 그린에 미치지 못해서 깊은 벙커로 빠져버린 입장에서는 이런 식이 과연 공정한 코스인가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내 멘탈은 이어지는 14, 15번 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14번은 뱀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한 페어웨이가, 15번은 티샷이 잘 맞았다고 해도 내리막 라이에서 저 윗편의 포대그린을 향해 어프로치해야하는, 아마도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아마추어에게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해준다. 정말이지, 나중에 더 실력을 갈고 닦아서 다시 정복하러 오마 그런 생각마저 들었는데 사실 우리나라 산악코스에는 이런 곳이 많다.
대미를 장식하는 18번 홀의 그린은 요즘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전형인 커다랗고 경사진, 그리고 이단 삼단으로 구겨놓은 모습이었다.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었지만 올라간 공이 다시 내려오고, 내리막 퍼팅이 저 아래로 굴러굴러 나가버리는 식이니까 허허 여기는 한국인가보다 헛웃음이 나왔다. 최근에 붙기 시작한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날이기도 했다. 원래 이번 골프여행에서는 산호세 인근에서 가장 어렵다는 The Ranch 골프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계획을 급수정하여 좀 편안한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 자체를 평가하자면 정말 나인브릿지에 필적한다고 할 것이니 캘리포니아의 50불짜리 골프장에게는 최고의 찬사가 될 것이다. 어쩌면 설계자들이 한국에다가 코스를 만들어보고는 이런 식이 미국에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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