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카고에서 북서쪽으로 두시간은 가야하는 마렝고까지 온 이유는 그저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일리노이주 골프장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어있었던 블랙스톤이라는 이름이 기억나서였다. 시카고에서라면 꽤나 멀지만 오전에 플레이한 Stonewall Orchard에서라면 4,50분 정도 거리였고, 어차피 이날은 혼자서 할일도 없었다. 다음날 오전에 귀국하므로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라운드는 좀 좋은 곳에서 했으면 했는데 49불 그린피는 이 시골에서 많이 비싸보였지만 그만큼 좋은 골프장이다 싶었다. 설계자인 Bob Lohmann은 미국 중부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골프장을 디자인한 사람인데 동네 퍼블릭부터 최고급 회원제까지, 닥치는대로 다작하는 모양이다. 프로샵에서 45불을 치르니 2시에 혼자 나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그때가 한시반 정도였는데 1번 홀의 스타터에게 가서 기다리려니 티오프 예정이었던 한국사람 포썸이 늦게 오는 바람에 기다리던 (각각 혼자서 온) 사람들이 조인해서 우리도 포썸이 되었다. 우리 앞의 한국인들이 느려터질 것이므로 긴 오후가 될 것으로 걱정했으나 정작 늦는 것은 우리 팀이었다. 한 명은 가장 뒷쪽의 블랙티에서, 나머지 셋은 그다음인 골드티에서 플레이했다. 5시간이 넘는 라운드가 왜 생기나 했더니 오늘에야 깨달았다. 끝없는 잡담에 공을 찾느라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한명이 공을 치고나서야 다음 사람이 클럽을 꺼내고 스윙연습을 시작한다. 착해보이지만 인생을 막사는 것처럼 보이는 뚱땡이 백인 셋이 모이니까 정말 수다가 심했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온갖 욕설에 음담패설을 해가며 껄껄대는 것은 알겠다. 그래도 조용히, 천천히 치니까 내게는 인생 라운드가 되었는데 귀국해서 연습장을 끊을 결심이 옅어져버렸다. 우드도, 아이언도, 퍼팅도 다 잘된 라운드였다.
이 골프장은 야트막한 산세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진입로에서 내려다보이는 홀들 (아마 10번과 11번일 것이다)은 황량한 링크스 같지만 전반적으로는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오고, 나무도 울창한 골프장이다. 1번 홀은 비교적 짧은 파 4로 페어웨이 끝까지 가서는 우측으로 90도 꺾어져서 어프로치하는 디자인인데 어이없게도 시작부터 버디로 출발. 귀국하기 전의 마지막 라운드라서 그런지 공이 전반적으로 잘 맞았지만 그보다도 몇일이 지나도 홀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오전에 갔었던 Stonewall Orchard도 홀인원을 했던 홀 등등 기억이 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저 경치좋고 관리상태가 좋은 정도로 기억남). 그리고 공만 맞추자는 심정으로 스윙을 작게 했더니 내 샷거리가 많이 짧았는데 그냥 두 클럽 정도를 길게 잡는다는 생각으로 했다. 벤트그라스 페어웨이의 관리상태가 완벽했고, 그린스피드도 아주 빨랐다.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후반 홀들이 경치로나 재미로나 최고였는데 동반자들이 헤매는 가운데 혼자서만 연속 파를 잡아낸 것도 뿌듯했다. 압권은 14번인데 240야드 지점부터 그린앞까지 늪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린은 벙커로 둘러싸인 채 높게 솟아있는 파 4 홀이었다. 늪지 앞에서도 200야드 오르막이라 투온을 시도한 이들은 여지없이 비극을 맛보는데 나는 40야드를 더 레이업으로 보내서는 거기서 하이브리드로 어프로치했다. 쩍~ 소리와 함께 샷 직후 그린을 바라보니 핀 바로 앞으로 흰 공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으니 이런 맛에 골프를 치는 것이다. 17번도 기억에 남는다. 티박스가 높이 위치해있기는 하지만 실거리 234야드에 그린 앞에는 연못이 있는 파 3 홀에서 나 혼자서만 온그린을 해놓고는 동반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들중 두명은 남은 18번 홀을 플레이하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여기에는 독특한 홀이 하나 있는데 가운데 언덕을 넘어가야하는 5번이었다. 그린이 보이지 않았고, golfshot의 거리를 보니 그린까지 240야드라고 하여 좀 짧은 파 4로구나 드라이버로 티샷을 했는데 대체 공이 어디로 갔을까 한참을 찾아다니다보니 그린 입구에 뭐가 보였다. 설마 저게 내 공일까? 생각하면서 가보니 내가 원온을 한 것이었고, 오전에 홀인원에 이어서 이글까지 하나보다 했더니 여기가 파 3 홀이라고 한다. 그린이 보이지 않는 숏홀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것 같다. 내가 라운드를 마친 시각이 오후 6시반이었는데 5시간 반이나 걸린 라운드였고 (반면 오전의 Stonewall Orchard는 혼자 치기는 했어도 3시간만에 18홀을 끝냈었다), 호텔까지 한시간 반을 운전해야했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많이 힘들었다. 배는 고프지 않으면서 전신에 의욕이 하나도 남지 않은 몸상태로 쉬엄쉬엄 운전하면서 던킨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커피를, TJ 맥스가 보이면 들러서 옷가지를 둘러보고 하면서 천천히 귀가. 밤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으로 가야하는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시카고는 정오 정도에 귀국하는 비행기가 뜨기 때문에 하루를 더 자야한다. 괜히 하루를 낭비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번처럼 몸이 힘들다보니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흘간 총 162홀을 치는 이런 강행군은 작년까지만 해도 별거 아니었는데, 공이 잘맞건 못맞건 즐거웠었는데 슬슬 힘에 부친다. 귀국하면 주말내내 또 라운드가 잡혀있는데 생각같아서는 못간다고 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또 한국에서의 골프.
'미국 골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Dos Lagos, Corona, CA (0) | 2021.01.07 |
---|---|
Bridges of Poplar Creek, Hoffman Estates, IL (0) | 2021.01.03 |
Stonewall Orchard, Grayslake, IL (0) | 2020.05.26 |
Countryside (Prairie), Mundelein, IL (0) | 2020.05.25 |
Countryside (Traditional), Mundelein, IL (0) | 2020.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