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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그라는 것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13년 초반인데 나름 사연이 있었다. 내가 미국 보스턴에서 살다가 귀국한 것이 2012년 여름이었는데 귀국 직전에 집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릎뼈가 골절된 상태로 귀국했던 것이다.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짚으며 몇달간 생활했었는데 생활의 불편함보다도 다시 내가 골프를 칠 수 있을까 자나깨나 그런 생각만 했다.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이 골프장의 구석구석이 손에 잡힐듯 떠올랐었다. 미국에 살면서 열심히 골프를 쳤었지만 사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열혈 골퍼는 아니었다. 시간때우는 목적과 푸른 잔디를 묵묵히 걷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가 차츰 재미가 생겼을 뿐 귀국 직전까지도 백돌이를 면하지 못한 그저그런 골퍼였다. 각설하고, 아무튼 몇달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생활을 하다 마침내 목발없이 서서 다시 채를 휘두를 수 있게 되자 인생 까짓거 뭐 있냐 이제부터는 죽어라고 골프만 치면서 살아야지 그런 식으로 인생관이 바뀌었던 것 같다. 그래서 2012년 연말에 다시 보스턴에 가서는 두근두근 심정으로 Leo J. Martin 골프장을 다시 방문했었고, 겨울에는 인도네시아로 가서 무더위속에 매일 36홀씩 돌았다. 건강하게 골프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했던 시절이다. 다만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서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해서 아쉬움이 남았고, 그런 느낌을 기록하기 위해 이 블로그도 만든 것이었다.
나는 이 브룩라인 (Brookline, MA)이라는 동네에, 이 골프장 근방에서 2년 정도 살았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2010년 9월 14일에 처음 이 골프장에 출석을 시작해서는 2011년 7월 27일에 100번째 라운드, 그리고 귀국하기까지 정확히 200번을 돌았던 코스다. 정식 명칭은 Robert T Lynch municipal golf course at Putterham Meadows인데 줄여서 그냥 Putterham 골프장이라고들 불렀다 (나는 아직도 저 Robert T Lynch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골프장의 성격은 미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시립 (municipal), 퍼블릭인데 바로 옆에 붙어있는 The Country Club (TCC)이 미국 골프역사의 시발점격인 곳이어서 Putterham 골프장도 나름 전통에 자부심을 느끼는 곳이다. Brookline 시가 TCC 옆의 황무지 (Putterham Meadows)에 골프장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 1923년, 결국 18홀 골프장이 완공된 것이 1933년이라고 한다. TCC가 워낙 유명하고 돈이 많은 골프장인데다가 수차례의 US 오픈과 1999년의 라이더컵을 개최하면서 그때마다 주차장, 피크닉장 등으로 이 골프장을 이용했고, 그 댓가로 꽤 많은 돈을 이곳에 기부한 덕택에 비교적 관리가 잘 되는 곳이다. 골프장의 설계는 Wayne Stiles와 John Van Kleek이 맡았고, 총 길이는 블루티에서 6317 야드, 파 71이다. 평일 요금은 $40 정도인데 나는 아무 때나 무료로 칠 수 있는 일년 멤버쉽을 $1100 주고 가입했었다. 실은, 이 근방에서 가격과 코스상태를 모두 고려할 때 가장 괜찮은 골프장은 (집에서 3마일 정도 떨어진) George Wright 골프장인데 거기는 보스턴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멤버로 등록하려면 보스턴 시민은 $900, 타 지역 주민은 $1300을 내야 했다.
이번에 보니까 몇년사이에 리노베이션을 해서 뭔가 많이 달라져보이긴 했다. 1번홀 페어웨이 옆으로 드라이빙 레인지가 생겼고, 덕택에 짧은 롱홀이었던 1번이 다시 파 4로 바뀌어서 총 파 70 코스가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 클럽하우스로 걸어가다보면 보이는 Francis Ouimet과 Eddie Lowery의 동상은 여전히 나를 반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평일 그린피 35불을 (그러고보니 십년전보다 오히려 가격이 더 내렸네) 지불하고 첫 홀로 걸어가는데 201번째 방문임에도 뭔가 낯설다. 드라이빙 레인지를 만들면서 1번 홀을 변경했는데 예전의 도그렉 파 5에서 좌절과 함께 시작했던 라운드에 비해 높이 위치한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내려다보면 티샷을 한다. 그리고 그새 코스에 뭐를 했는지 코스에 잔디가 쌩쌩하다. 비가오나 날이 맑거나 질척거리던 페어웨이가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러프도, 벙커도 잘 관리되는 코스다왔다. 오르막에 짧은 파 4인 2번 홀에서도 어렵잖게 투온을 하고보니 예전에는 세번만에 올라오기도 힘들었는데, 그때 이웃집의 송** 박사는 세컨샷이 우측 해저드로 가버렸는데 공을 찾았다며 쓰리온이라고 우겼었지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간다.
그런데 예전에는 홀마다 나름 이름을 붙였었는데 지금은 그냥 몇번 홀이라는 표지판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5번 홀의 이름이 "Dana Land"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뭐, 뜻도 모르긴 했지만 뭔가 멋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5번 홀이다. 그러고보니 5번도 210야드 파 3인데 한번도 원온을 못해봤었고, 이번에도 5번 우드로 친 티샷이 살짝 짧았다. 반면에 도그렉에 긴 파 5라서 쓰리온도 어려웠던 6번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 투온에 성공하였으니 내 실력이 많이 좋아지긴 했나보다. 그리고 높이 솟아있는 그린이 인상적인 7번을 지나면 8번 홀 티박스로 가기 직전에 옆의 숲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그리로 가면 The Country Club이 나오는데 무슨 담을 둘러놓은 것도 아니라서 맘만 먹으면 슬쩍 들어가서 몇 홀을 칠 수도 있게 생겼다. 보안에 무심한 것인지 사람들을 너무 믿는 것인지 전형적인 미국이구나 싶었는데 전세계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컨트리클럽으로 알려진 The Country Club이라 더욱 놀랍다. 내 생전에 거기서 골프칠 일이 있기는 할라나 지금부터라도 보스턴의 실력자들과 친하게 지내볼까나 그런 생각도 한다.
11번 홀도 우측 도그렉인데 180미터쯤 치면 막창이고, 페어웨이 끝에서 9도로 꺾여서 저 산위의 그린으로 어프로치한다. 짧게 가보겠다고 페어웨이 우측의 나무를 넘기는 시도는 무모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좌측으로 티샷을 하면 산꼭대기까지 160미터를 보내게 되니까 정말 어렵다. 생각해보니 백년전쯤의 골프장들은 거리가 짧은 대신에 블라인드홀이나 도그렉을 선호했던 모양이다. 눈감으면 손에 잡힐듯이 익숙한 코스지만 생각대로 공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물집으로 발이 아파서 거의 절룩거리며 18번 홀에 도달하면 여기도 격세지감으로 좋아졌다고 느껴진다. 페어웨이가 마치 늪지대 같아서 물을 피해가며, 그리고 거위들이 싸질러놓은 배설물을 피해가며 쳤던 홀인데 지금은 뽀송뽀송해졌다. 이정도면 보스턴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한번 가보시라고 권해볼만한 골프장이다. 3일간 하루 54홀씩을 걸어다녔더니 안아픈 부위가 없었지만 그냥 가기가 아쉬워 클럽하우스에 들어가서 나의 훼이보릿 메뉴였던 Steak Bomb과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18번 홀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저무는 하늘과 코스를 바라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장소가 여기였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지나가는 이들도 예전에 본듯한 얼굴들인데 서로 누군데 낯이 익을까 그러면서 미소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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