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 J. Martin, Weston, MA

보스턴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골프장이라면 단연코 매사추세츠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Leo J Martin과 Ponkapoag 골프장이다. 특히 여름철의 트와일라잇 요금은 $12 밖에 안해서 이 돈을 내고 18홀을 돌고나면 뭔가 (사기를 친 느낌으로) 뿌듯해지는데 가격이 말해주듯이 관리상태는 엉망이었다. 페어웨이와 러프의 구분이 거의 안되고, 그린은 느린 정도가 아니라 잔디가 다 죽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텍사스나 서부의 골프장을 가보니 사막지대 골프장은 비슷한 수준이 많아서) 그동안 너무 좋은 곳만 다녔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별점을 매긴다면 별 하나 정도? 실은 이 골프장도 Donald Ross가 20세기 초반에 설계한 역사적인 장소라서 로칼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50년쯤 전에는 큰 대회도 종종 열렸다고 한다. 공을 쳐보면, 비록 잔디보다 맨땅이 더 많은데다가 그나마 잔디에는 거위들이 싸질러놓은 배설물로 가득하지만 전형적인 도날드 로스의 코스였다. 블라인드 홀이나 꽤 긴 파 5 홀들도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던 곳이다.

이쪽 동네 골프장에서는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캐나디언 구스. 친환경이구나 싶지만 곳곳에 어찌나 많은 똥을 싸질러놓는지 때로는 똥밭에서 공을 쳐야한다..ㅠㅠ 그래도 가방에 얼음물 한 병과 골프공 서너개를 넣고 18홀을 걷던 그 시절이 그립다. 코스가 쉬운지 어려운지, 후졌는지 아름다운지 따질 겨를도 없이 골프백을 둘러매고 그저 묵묵히 걷는 것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귀국 직전에 교통사고로 몇달간 목발을 집고 살았었는데 회복후 다시 보스턴을 방문한 첫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로 여기다. 오전에 변호사를 만나 사고처리를 마무리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골프장의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고서 프로샵을 향해 걸어갈 때는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리고 다시 골프백을 어깨에 걸치고 18홀을 무사히 걸었기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이번에 미국에 골프치러 간다고 하니까 친구가 돈도 많네 한마디를 한다. 돈이 많으면 한국에서 치지 뭐하러 거기까지 가겠냐 속으로 궁시렁거렸는데 Leo J. Martin의 평일 그린피는 27불이다. 이게 정가이고, (오후 4시에나 열리는 트와일라이트 요금을 제외하면) 할인받는 경우는 없다. 이날 총 54홀을 돌았는데 합하면 거의 백불이니까 원없이, 지겹도록 골프만 쳤다. Leo J. Martin을 오랫만에 돌아보니 새삼 관리상태가 아쉬운 것이 코스가 어렵기도 하면서 아주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초반의 지루한 홀들을 몇개 지나면 상상력이 필요한 Donald Ross 설계에 골탕을 먹는다. 특히 후반을 마무리하는 16번부터의 스트레치는 블라인드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내가 보스턴에 살던 당시에는 한번도 넘어가보지 못한 16번 홀의 티샷이 이제 보니까 200야드면 넘어가는 것이었고, 거기서부터 숲속 깊숙히 자리한 조그만 그린을 공을 올려야하는데 거의 그린 주변까지 가야만 아하 이렇게 생긴 거로구나 한다. 우측으로 심하게 꺾여서 내리막 파 4였던 17번은 지금은 파 3 홀로 바뀌어서 살짝 아쉬웠고, 세번의 샷이 모두 정확해야하는 18번도 이번에 나는 파를 했다. 힘들었지만 몇년전에는 도저히 안될 것만 같았던 홀들에 복수할 수 있었으니 빗물이 들이쳐서 젖는 바람에 퉁퉁 불은 발도 견딜만했다. 정말이지 무슨 대회라도 좀 개최해서 그참에 잔디관리를 좀 하면 좋겠다 싶은 (그러면 가격이 올라가겠지만) 생각이니 애증의 골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