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내 골프장

소피아그린

hm 2022. 8. 1. 05:13

여주의 끝자락에 위치한 27홀 골프장인 소피아그린은 교원공제회가 주인이라서 나같은 사립학교 교원은 (퍼블릭의 인터넷 회원이 아닌) "진정한" 회원대우를 받는다. 평일이라면 때에 따라서 xgolf 등의 특가가 공제회원가보다 싼 경우도 있지만 대충 십만원 밑으로 18홀을 치니까 좋은 조건이다 (덕분에 성수기의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 화인에이엠 (노준택?) 설계의 27홀 코스는 예전에는 마운틴/레이크/밸리라는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세종/여강/황학 코스로 되어있다. 의미가 나름 있겠으나 마운틴 코스라고 물이 없는 게 아니고, 레이크 코스도 산과 계곡일테니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코스의 이름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여러번 가보았지만 언제나 잘 관리된 코스에 늘 풀부킹이어서 이 사람들은 과연 선생님들일까 그저 싸고 좋은 골프장을 찾아온 이들일까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치기 좋은 계절이 얼마 안되니까 때가 오면 부지런히 나가는 것이 남는 일일텐데 예전의 나는 그저 새로운 코스를 찾아나서기 바빴지만 이제는 소피아그린처럼 좋은 골프장이라면 몇번이라도 나갈 용의가 있다. 전에 여기 갔을 당시에는 틈만 나면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는데 캐디가 "혹시 블로그하시나요?" 물어봐서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번에는 주말 27홀로 예약이 되었는데 그린피가 인당 16만원씩이니까 나름 괜찮았다.

어차피 여기는 다 마운틴이다. 게다가 긴 홀들이 대개 오르막이기 때문에 장타자가 아니라면 꽤나 힘들다. 세종 2번 홀에서 나는 쓰리온을 목표로 세컨샷에 우드를 꺼내들었으나 결국은 하이브리드로 어프로치를 해야했으니 실제 체감은 600미터는 되어보였다. 버디는 롱홀에서 나오는 거라는데, 요즘에 유튜브에서 남들 골프치는 모습을 보면 백돌이같이 보이는 이들도 종종 파 5 쓰리온을 하니까 쉬운 것처럼 보였는데 아직도 내게는 벅찬 일이다. 그래도 헐떡거리다가도 그린에 공을 올려놓고 고개를 들어보면 저멀리 능선들이 겹쳐보이는 광경은 우리나라에서나 가능한 장관이다. 여강 코스에서는 더블 도그렉인 2번이 나름 재미있는 홀인데 여간한 장타자도 투온이 어렵게 만들어져 있어서 또박또박 쓰리온이면 나름 뿌듯하다. 화이트티에서 치는 아마추어에게도 티샷의 비거리는 그날의 스코어를 좌우한다는 (그리고 다음 샷을 공략하기 좋은 위치의 페어웨이로 가야한다) 진리를 다시 깨닫는 홀이다. 한편, 또다른 파 5인 여강 5번은 과감하게 좌측 언덕을 넘겨치면 저멀리 내리막에 그린이 보이니까 투온의 유혹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나야 내 우드샷 비거리를 아니까 잘라가는데 이번에도 괜히 우드나 하이브리드로 그린 근처까지 보내려고 욕심낼 이유가 없는 것이 내리막 웨지샷이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에게는 여강 9번처럼 370미터 정도인 파 4 홀이 가장 어렵다. 그린 주변이 벙커나 해저드라서 어정쩡한 거리로 잘라가기도 그렇고 과감하게 우드로 어프로치하는 것도 난감하다.

소피아그린에서는 황학 코스로 시작하는 것이 설계자의 의도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가장 편안한 티샷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번 홀을 시원스런 내리막에 넓고 짧은 파 4로 만드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일파만파 어쩌고가 일상적인 우리나라 골프에서는 누군가는 몸이 덜 풀렸어도 첫 홀에서 파를 하기 마련이다. 황학 코스의 진면목은 (드디어) 레이크가 나오는 3번부터 시작되는데 티샷이 잘 맞았더라도 아일랜드 그린이기 때문에 투온 시도는 대단히 위험하다. 물을 넘어가서 오른쪽 그린으로 쏘는 5번과 깊은 계곡을 넘어가야하는 9번도 인상적인데 나야 재미있게 쳤지만 티샷 공포증이 있던 초보 시절에 왔더라면 멘붕을 겪었을 디자인이다. 특히 황학 5번은 티샷이 제대로 맞으면 원온도 가능하지만 벙커에 빠지느니 아이언 두번으로 안전하게 올라가는 것이 현명하다.

이날 나는 여강/황학/세종 코스에서 각각 40/40/41타를 쳤다. 요즘에는 어쩌다 한번씩은 싱글을 하니까 아쉬울 것은 없었는데 마지막 홀에서의 파 퍼트 실패는 좀 맥빠지는 경험이었다. 3미터 정도 되었지만 오르막이었고, 길도 잘 보였다. 평소대로 잘 밀어주었고, 들어갔다 생각했는데 살짝 짧았다. 동반자들도 아쉬워했고, 캐디가 마지막 홀이라고 올파로 적어주긴 했는데 생각대로 잘 보낸 퍼트였어도 스피드를 맞추지 못해서 안들어가면 기분이 내내 별로다. 그래도 마지막 퍼트였기에 망정이지 라운드 중간에 이런 기분을 느끼면 이후에는 다 망치게 되곤 했었다. 다른 스포츠라면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얼른 화를 내고 풀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지만 골프는 아니다. 화를 내버리면 그게 계속 남는다. 다음 홀에서 만회하리라 주먹을 불끈 쥐기라도 한다면 티샷은 여지없이 오비가 된다. 사실, 레저로 즐기는 골프에서 샷이나 퍼트로 일희일비하는 것도 우습다. 내가 무슨 돈벌이로 하는 프로도 아니고, 우승의 영광을 쫓는 대회에 나간 것도 (내 남은 인생에서도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다. 해저드에 들어간 공도, 러프에 깊이 박혀버린 공도 다 내가 그렇게 친 것이지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이래서 골프는 재미있는 운동이다.

 

 

'국내 골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젠스필드  (0) 2022.08.07
서원힐스  (0) 2022.08.04
SG 아름다운  (0) 2022.07.30
이글몬트  (0) 2022.07.27
오너스  (0) 2022.07.2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