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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쯤 전에는 기업마다 돈을 좀 벌었다 싶으면 너도나도 골프장 하나씩을 갖고있으려던 시절이었다. 경춘고속도로가 생길 즈음에 서로 경쟁하듯 고급스럽게 골프장을 만들어서는 회원권 장사를 했었는데 세월이 바뀌어 2천년대 후반이 되니까 골프업계가 급격히 쇠락하면서 이들 대부분이 망하거나 주인이 바뀌어 퍼블릭이 되었다. 강촌에 지어지던 엠스클럽 트룬도 처음에는 야심차게 시작했겠지만 골프 붐이 사그러들면서 (퍼블릭) 오너스 골프클럽이 되었고, 골프가 다시 흥하는 지금까지도 그대로의 이름을 쓴다. 여기 오너스는 (Honors가 아니라) Owner's로 쓰니까 좀 이상한 이름인데 안문환 씨가 설계한 18홀 산악코스다. 골프장이 자리잡은 입지와 설계자로 미루어보면 어떤 식일지 감이 오겠으나 아무튼 (처음에는) 고급 회원제의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한 곳이고, 지금의 주인은 모 사모펀드라고 한다.
힐코스 1번에서부터 내려다보면 오늘의 골프가 어떤 식일지 감이 온다. 푸른 양잔디에 좁아보이는 페어웨이라 근사해보이기는 하는데 티샷이 죽지 않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우리나라 산악코스의 전형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식의 경치와 레이아웃을 아주 좋아한다. 도전하는 맛이 있으면서 경치만 보고있어도 행복하다. 골프라는 운동이 희안한 것이, 곧잘 치다가도 한번씩 망가지는 때가 있는데 그런 날에는 제아무리 페블비치에서라도 괴로울 수 있다. 명랑골프니 걷기만 해도 좋네, 공만 치지 말고 경치를 좀 봐라 어쩌고 해도 역시 골프는 공이 생각한 곳으로 가줘야 즐길 여유도 생기는 것이다. 오너스에 대한 내 평가는 일단 아주 좋은 편이지만 주관적인 요소를 내려놓더라도 입지나 풍광이 근사하다.
좁고 어렵다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던데 오너스에는 강원도 산골이 아니면 불가능할, 극적인 레이아웃의 홀들이 몇몇 있다. 높은 위치에서 저멀리 그린 뒷편으로 능선이 아름답게 보이는 힐 4번이나 페어웨이가 좌에서 우로 45도는 나오게 경사진 힐 9번은 욕이 나올지언정 정말 아름다왔다. 클럽하우스에서 보이는 엄청난 경사의 레이크 9번도 그렇다. 그린까지 끝없이 올라가야하지만 의외로 레이크 9번이 핸디캡이 낮아서 버디나 파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보이는 모습에 압도당하지 않고, 평소처럼 치면 나름 괜찮은 골프장인데 내 주변에도 거기는 드라이버도 못치는데 그게 무슨 골프장이에요 하는 이들이 있으니 좀 안타깝다. 어쩌다 한번씩 필드에 나와 부푼 기대가 무너지면 실망이 클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원래 골프란 운동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마 이후라 그린이 살짝 느렸지만 전반적인 잔디의 상태가 아주 좋아보여서 관리를 잘하는구나 생각했다. 코로나 이전의 가격을 생각하면 여전히 비싸도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근방의 골프장들과 비교해도) 나름 저렴하게 그린피를 책정해놓기도 해서 주말의 교통정체만 피할 수 있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