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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프링스 초입에 있는 대규모 리조트인 웨스틴 미션힐스인데 작년에 가서는 Pete Dye 코스만 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차에 underpar.com에서 무제한 골프 인당 $80 바우처를 발견하고는 냉큼 구입했다. 작년에는 18홀을 치는데 핫딜로 용케 $82 티타임을 잡았다고 좋아했었으나 이번에는 반값으로 36홀을 치는 것이다. Pete Dye야 원래부터 코스를 어렵게 만들기로 유명했지만 작년의 기억으로는 (아마도 리조트 코스라서 그랬는지)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는데 Gary Player 시그너처 코스는 어떨까 은근 흥분되는 상태였다. 그의 코스를 많이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 드라마틱한 경치에 정확한 샷을 요구하는 타겟골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구나 이번에는 날씨도 도와줘서 좀 춥긴 하지만 적어도 비는 내리지 않는 화창한 아침이다. 멀리 간다고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어도 일찌감치 도착해서 다행인 것이 게리플레이어 코스는 작년에 와본 Pete Dye 코스에서도 일마일 정도 더 들어가야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헷갈릴 가능성이 있다. 리조트와 건물을 공유하는 Pete Dye 코스에 비해 Gary Player 코스의 프로샵은 매우 초라해보였으나 어차피 오후에는 그쪽으로 갈터이니 오히려 한적한 분위기가 더 좋았다. 체크인을 하며 바라본 코스는 확실히 조금 메말라 보였는데 그래도 (겨울임을 감안하면) 경치는 좋아보였다.
어제 LA 공항으로 도착했는데 Los Verdes에서 첫 티샷을 하려고보니 드라이버 헤드에서 샤프트로 이어지는 부위가 댕강 부러져있었다. 항공편으로 골프채를 수없이 부쳐봤어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마 화물을 집어던지다가 그런 모양이었다. 결국 어제는 5번 우드로 티샷을 했었고, 오늘은 M2 구형을 하나 구입했는데 속쓰릴 일이지만 비닐을 막 벗긴 드라이버가 손에 익지 않았어도 그럭저럭 맞아주어 (페어웨이가 넓은 덕을 좀 보았다) 다행이었다. 카트패스온리라고 일고있었는데 두번째 홀을 치려니까 어느샌가 쫓아온 할아버지 팀이 페어웨이에 카트가 들어가도 된다고 얘기해줘서 편해졌다. 그 팀을 앞세워 보내고나니 앞에도 뒤에도 팀을 만날 수가 없어서 3시간만에 18홀을 다 돌았다. 저번의 Pete Dye 코스와 달리 이쪽은 많이 한산해보였다. 덕택에 페어웨이 상태는 최고, 상대적으로 그린은 살짝 느렸다. 첫번째 홀부터 양쪽으로 주택가를 (리조트?) 따라가는 레이아웃이라 평범해보였지만 호수를 넘어가는 200야드 파 3인 5번부터는 갑자기 어렵고 드라마틱한 라운드로 바뀐다. 우측의 물을 피해서 쓰리온이지만 장타자라면 투온 욕심을 부릴만한 11번이 근사했고, 가운데 길다란 호수를 두고 갔다가 돌아오는 13, 14번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무시무시하고 어려운 홀들이 (핸디캡 1번과 2번) 파 3라는 것도 Gary Player의 성격을 파악하게 해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플레이한 화이트티에서는 충분히 즐거운 코스였고, 뒷쪽 티박스를 쓴다면 완전히 다른, 무지막지한 디자인이다 싶었다.
일찌감치 라운드를 끝내고 오후 티타임을 잡으려니 살짝 걱정도 되었는데 소심한 성격이라 쿠폰이나 할인행사에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급식쿠폰을 받고도 창피해서 매점에 가지 못하는 저소득층 초등학생의 심정?). 막상 프로샵에 들어가니 걱정은 씻은듯이 사라졌는데 묻기도 전에 환하게 웃으며 라운드는 어땠냐 오후에는 어느 코스로 잡아줄까 몇시로 해줄까 먼저 물어봐준 나이스한 프로님 덕택. 그러나 Pete Dye 코스의 오후 티타임이 1시 이후에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하여 아쉬움을 뒤로 하고는 다른 (예전에 돌아보지 않은) 골프장을 찾아나섰다.
여담 하나: 어제 운전하다가 할리 오토바이 뒷자리에 여자를 태운 중년의 아저씨를 봤다. 마침 전전날쯤에 표지판에서 "Encino"라는 동네이름을 보았기에 Roger Waters의 (그 유명한) "5:01 am - The Pros and Cons of Hitch-hiking" 노래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다 외웠었는데 30년이 흘렀어도 따라부를 수 있다. 남자가 길에서 태우고 수작을 걸어보는 여성은 가사에 따르면 'a housewife from Encino, whose husband's on the golf course'였다. 노래가 나왔던 당시에 나는 골프를 치지 않았으니까 가사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던 모양인데 이제는 살짝 이해가 간다. 중년의 가장인 나도 가족들을 집에 두고는 열심히 골프장에 다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살짝 미안해져서 얼른 집에 가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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