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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우중충한 한국의 겨울을 벗어나 동남아 등지로 많이들 가시지만 나는 캘리포니아에 왔다. 이번 일정의 컨셉은 무조건 가성비여서 하루 36홀에 $80 미만으로 잡기로 했다. 그리하여 첫번째 코스는 샌디에고 시내에서 가까우면서도 Bonita 시립 퍼블릭인 Chula Vista 골프클럽이 되었는데 소위 말하는 muni 코스로는 평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오전 7시를 조금 넘긴 티타임이 인당 $29이면 꽤 저렴하다. 오후에는 인근의 Salt Creek에서 칠 예정이므로 (이상한 일이지만 Chula Vista 골프클럽은 보니타 시에 있는 시립 골프장임. 근방에 Bonita 골프클럽이라고 또 있는데 거기는 퍼블릭이긴 하지만 muni는 아니다) 끝나고 Las Americas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렀다가 샌디에고 올드타운의 멕시칸 식당을 경험하기에 완벽한 동선이다. 홈페이지에는 Billy Casper 설계라고 되어있지만 golfadvisor.com에서는 Harry Rainville로 나와있는데 누가 했건간에 (그들의 코스를 많이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간다 (파 73에 슬로프가 자그마치 130). 막상 가보니 해저드가 중간중간 나오지만 샷에 방해되기보다는 조경을 위한 배치에 가깝고, 넓고 평평한 페어웨이에 그린까지 별다른 어려움없이 도달할 수 있다.
똑바로 뻗어서 앞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형식이지만 재미있게도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폭이 좁은) 개울이 모든 홀을 따라간다. 특히 파 5가 세개나 되는 전반에서는 개울을 따라 페어웨이가 진행되고, 후반은 페어웨이 중간을 가로지른다. 코스의 옆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어서 (물론 곳곳에 그물망이 쳐져있기는 하지만) 조깅이나 산책하는 이들이 신경쓰이기도 한다. 페어웨이도 겨울답게 잔디가 시원찮은 곳이 보이지만 그린만큼은 매우 단단하고 빨랐다. 한국에서 폭이 수십미터인 그린만 보다가 작고 단단한 그린이 낯설기도 했으나 오래된 코스답게 그린 근처에 벙커가 하나씩 있는 외에는 별다른 장애물이 없었고, 일단 올리기만 하면 원펏 아니면 투펏으로 마무리가 가능했다. 저렴한 동네 muni의 특징이지만 우리가 오전 라운드를 마칠 무렵에 보니 온동네 아재들은 다 나온듯이 복잡하고 붐벼서 오전 일찍 시작하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미국 골프장이 처음인 동반자들에게 미리 경고해놓긴 했지만 삼만원짜리 골프장에서 대단한 기대는 금물이다. 관리상태는 당연히 우리나라 코스가 낫다. 페어웨이에는 잔디가 없는 지역이 종종 보였고, 벙커의 모래도 굵었다. 그래도 난생 처음으로 카트를 몰고 페어웨이를 달리는 것에, 직접 거리를 가늠하고 그린의 경사를 읽는 일에 다들 즐거워보였다. 어쩌면 골프코스에서는 당연한 것일텐데 우리나라에서 열배의 돈을 지불하며 익숙해진 골프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그들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퍼블릭을 표방하는 코스들이 많아지면서 사람을 너무 많이 받으면서 티박스에는 고무매트를, 그린의 잔디를 제대로 깎지도 않은 곳들이 종종 보이던데 그래놓고도 평일 그린피에 카트, 캐디까지 하면 십여만원 이상이 드니까 황당한 일이다. 내년에는 좀 더 자주 미국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여느 미국행과 마찬가지로 로스트볼 사이트에서 싸구려 공을 수십개씩 주문해서 쳤다. 좋았던 그 시절에는 맨날 영업사원들이 사은품이라며 들고오던 것이 타이틀리스 프로 v1 (아니면 v1x) 골프공이었기 때문에 골프를 안 치던 나로서는 책꽂이 구석에 수북하게 쌓아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골프를 시작하면서 그 공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들고 나갔는데 매 홀마다 공 하나씩은 저멀리 숲속으로 아니면 물속으로 잃어버리곤 했더니 캐디가 나보다도 더 안타까와하면서 제발 새 공은 넣어두고 헌, 싸구려 공으로 치라고 그러던 기억도 난다. 미국에서도 골프샵에서 프로 v1 12개들이 상자가 $50 정도니까 (유독 타이틀리스트 제품은 세일에서도 제외되곤 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싼 편도 아니다. 그동안은 직접 내 돈을 주고 공을 사보지 않았으니까 골프공이 저렇게나 비싼지도 모르고, 아까운 생각도 없이 쳤었다. 나중에 공을 내 돈으로 사야하는 상황이 되니까 공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 일이지 깨닫게 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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