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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가지말라고 말리는 용인 컨트리클럽이지만 수도권의 골프장을 거의 모두 가본 입장에서는 달랑 한두개가 아직도 (못가본 채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한번쯤은 가보기로 했다. 실은, 골프장 그린피가 미친듯이 올라간 요즘에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솔깃했는데 얼마나 후지길래 이렇게 싸냐 싶을 수준이었다. 용인이라는 지명을 선점했으니 상당히 오래되었을 줄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생긴지 십수년밖에 되지 않았고, 이인환 씨가 설계한 18홀 퍼블릭이다. (수도권 최악이라는) 용인 cc에 대한 악평들은 대개 좁고, 관리상태가 시원찮고, 많이 밀린다는 (혹은 소떼몰이하듯 빠른 진행) 정도로 정리되는데 대중제 골프장임을 고려해서 기대수준을 낮추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간다. 그리고, 영 아니면 다시는 안가면 그만이다. 양지 ic를 지나 한참을 가기 때문에 용인이라고는 해도 서울에서라면 가까운 편이 아니다.
프론트에서 보니 200만원, 500만원 선불권을 파는데 할인도 해준다니까 가깝게 산다면 연습이나 하자 심정으로 괜찮을 것도 같았는데 아마도 다들 그런 생각으로 오는 곳인 모양이었다. 용인/석천 코스로 이름이 붙어있던데 우리는 석천 코스부터로 부킹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용인 코스로 시작했다. 저쪽부터 아닌가요? 물었더니 캐디가 귀찮다는듯이 여기 처음이신가봐요? 그러고 만다. 첫번째 홀부터 매트 위에서 티샷을 했으나 보이는 경치는 나쁘지 않았다. 똑바로 그린이 보였고, 좁긴 했지만 양쪽의 해저드만 피하면 공을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악취를 불평하는 이들도 있던데 이번에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잔디를 덜 깎아서 페어웨이가 러프같았고, 그린이 많이 느렸어도 요즘에는 훨씬 비싼 회원제도 그런 곳이 많다. 코스에 대한 불만보다는 골프장 수준이 그래서인지 앞팀, 뒷팀, 옆팀이 차라리 눈에 거슬렸다. 티샷이 나가버리면 자연스럽게 다시 티를 꽂고는 인당 두번씩을 치면서 재촉하는 캐디에게 큰 소리로 뭐라하는 앞팀, 우리가 그린을 벗어나기도 전에 어프로치하는 뒷팀, 마치 시장바닥처럼 산만하고 시끄러운 라운드였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치지만 우리 캐디도 페어웨이 옆에다가 우리를 내려주고는 (7번 달라고 하면 웨지까지 미리 쥐어줌 ㅋㅋ) 카트를 몰고 그린까지 가서 기다린다. 홀마다 있는 표지판도 퇴색하고 부서진 채로 방치된 모습이 골프장의 수준을 말해준다.
퍼블릭다운 코스에 우리는 싸구려니까 싸구려 손님만 받아요 마인드로 운영하는 용인 cc에 다시 올 일이 내 생에 앞으로 몇번이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나는 재미있었다. 좁은 페어웨이만 지키면 벙커 등의 장애물이 별로 없어서 그린에 공을 올리기 쉬웠고, 자잘한 굴곡이 있는 그린은 느려보이면서도 잘 굴러가서 좀 어려웠다. 생각보다 멋지네 싶었던 홀들이 몇몇 있었는데 오르막 500미터에 파 6인 석천 2번의 경우는 포온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쳤더니 쓰리온이 되어버려서 버디를 잡았고, 비슷한 전장이지만 내리막 파 5인 석천 9번도 티샷이 죽지만 않으면 버디를 노려볼 수 있는 홀이다. 최고의 경치는 용인 2번에서 만나게되는데 내리막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서 좌측의 호수를 다시 넘기게 되어있는 식이라 어디선가 본듯하면서도 아름다왔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싸구려 컨셉으로 갑니다, 싸구려 손님들만 오세요 식이었지만 코스만큼은 재미있었어서 좀 안타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