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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cc가 자리잡은 위치는 1975년에 개장했을 당시에만 해도 신갈오거리 근처의 시골 한구석이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용인시 구성지구의 한복판에, 바로 옆에는 강남대학교, 바로 앞에는 8차선 대로를 마주하는 그런 요충지가 되어버렸다. 십몇년전 바로 근처에서 (지금의 동백지구) 살던 당시에는 저게 골프장인가? 맞나? 그러고만 지나쳤더랬는데 이제는 골프치러 당당하게 드나들 수 있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당시에도 골프장 입구의 도로는 지금처럼 넓었지만 아무튼 세월이 흘러 주변은 이미 아파트로 가득하고, 앞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지만 골프장 정문으로 들어가면 신코스와 구코스를 포함하여 엄청난 크기의 녹지가 자리잡고 있다. 강남권에서는 거리로만 치면 가장 가까운 골프장들중 하나인데 경부고속도로를 타거나 분당을 통과하거나 대개는 막히기 때문에 가깝다고 마냥 좋아할 곳은 아니다. 그래도 대로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그냥 바로 클럽하우스가 나오는 게 (보통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을 생각하면) 좀 신기하다. 가까운 덕에 구코스, 신코스 할 것 없이 꽤나 여러번 가본 골프장인데 구코스 18홀의 설계자는 천룡 cc나 한성 cc도 만들고 했던 加藤福一 (가토 후쿠이치) 씨라고 알려졌지만 훨씬 나중에 추가된 신코스는 누구의 작품인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 신코스는 연덕춘 씨의 설계라고들 하지만 개장한 시기를 생각하면 좀 애매하다). 보통은 새로 짓는 코스들이 더 어려운 법인데 여기도 신코스 18홀이 더 길지만 상대적으로 넓직해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더라.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페어웨이의 잔디가 구코스는 야지, 신코스는 중지라고 나와있는데 아무튼 둘다 조선잔디 골프장이다.
신코스나 구코스나 어차피 빤히 갈 곳이 보이는 편안한 설계인데 신코스가 더 길고 어려워서 좋은 스코어를 내기 힘들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아파트가 둘러싼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그 속에서는 별천지처럼 아름답다. 가을에 오면 오래된 골프장답게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어가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즐겁게 골프치니까, 공도 잘 맞으니까 다 좋아보이는 건지, 캐디들도 경험이 많아보이고 열심히 플레이를 도와준다. 공을 찾으러, 클럽을 챙겨주러, 그린에서 공을 닦고 놓아주며 분주한 모습을 보면 저렇게까지 서비스를 해야만 하는가 그런 생각마저도 든다. 아무튼 수원cc의 캐디들은 이쁘지는 않아도 하는 행동을 보면 다 이뻐보인다. 클럽하우스가 예전에는 좀 낡았었는데 2015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깔끔해졌다. 사실 서울에서의 접근성을 빼면 수원cc의 매력이 뭐냐 한두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산과 계곡이 아름답게 둘러선 것도 아니고, 자연스레 "와우~" 소리가 터져나오는 그런 홀도 없다. 하지만 각각의 홀들이 나름 독특한 개성이 있어 고민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쉬워보여도 스코어가 좋게만 나오지는 않는다. 잔디와 그린의 관리상태도 나무랄 곳이 없었다. 몇몇 홀에서 초록의 잔디 뒷편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오히려 더 개성있는 코스로 보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4단계 어쩌고 때문에 2부 티타임이 오후 1시까지만으로 제한되는 탓인지 전반을 끝내고 거의 쉬지 않고 쳤더니 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서 18홀을 마쳤다. 오후 6시 이후에는 4인 식사가 불가능하므로 서둘러 근처의 식당에 갔는데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이 자리에 앉자마자 고기가 구워지고, 식사에 후식까지 먹고도 6시가 안되었다. 다들 어떻게든 살 길을 찾는구나 싶으면서도 이런 식의 방역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애매하다. 아무튼 명불허전, 수원 cc를 즐기고 나오려니 수도권에 골프장 회원권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럴 형편도 아니니까 꿈만 꾸는 거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부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깜냥으로는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식구들 굶지않고 사는 것에 만족이지 엄청난 돈이나 명예는 설사 굴러들어와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부자라고 하자면, 이 골프장을 설립했고, 한때 전국 제일의 땅부자로 통했던 삼호그룹 조** 회장의 비참한 말로를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한양 cc를 팔아서 그 돈으로 수원 cc와 제주도의 오라 cc를 만들었던 그가 결국 무일푼에 병든 몸으로 타향에서 외롭게 숨진 스토리를 듣자면 그 사연이 어쨌던간에 너무 거창해지는 것에 (나같은 소시민에게는 괜한 설레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대충 먹고사는 걱정없이, 아프지 말고, 골프나 치면서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