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52

루트 52는 여주의 스카이밸리와 신라 cc 중간쯤에다가 올해 새로 개장한 골프장으로, 설계자가 누구인지 밝히고있지 않지만 재미있고 잘 관리된 코스라고 벌써부터 평이 좋다 (원래의 주인이 금호여서 여주 아시아나 cc로 개발하던 곳인데 그렇다면 김병국 씨가 설계했을 것이고, 지금의 주인은 계룡건설이라고 한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그냥 어디라도 부킹만 되어라 심정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가릴 처지가 아니지만 여기는 평이 좋은 편이고, 최근 골프업계에 열을 올리는 카카오골프가 관리하는 모양이다. 신생이라서인지 카카오 때문인지 몰라도 소위 파워블로거들이 (공짜로 맛나게 잘먹었습니다 식의) 후기도 많이들 올리고, 유튜브에도 자주 등장하던데 내가 구식이어서인지 이런 식의 마케팅이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도 골프장이라면 인스타에 등장하는 송리단길 맛집보다는 알아서들 찾아오는 노포에 가까와야한다고 보지만 이름을 알려야하는 신생 골프장으로서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개장한지 일년도 채 안되었는데 golfshot 등의 해외 앱에 코스가 올라가있다).

피곤한 토요일 오후 티타임이지만 (이날도 거리두기 4단계로 2인 플레이) 후배가 운전하는 차로 가서 다행이었다. 신라 cc 등을 가려면 광주원주고속도로 (아마 이 도로가 루트 52의 어원인 모양이다) 동여주 ic로 나가는데 이 골프장은 조금 더 지나가서 동양평 ic로 나간다. 고속도로를 나가서 금방이긴 한데 아직 주변에 식당은 별로 들어서지 않아서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살짝 비가 내리는 날씨였고, 클럽하우스와 거기서 바라보는 코스는 역시 새로 만든 티가 났다. 깔끔하고 세련되었고, 뭔가 인공적으로 각잡고 만든 모습이어서 굳이 비교하자면 세종시의 레이캐슬이 먼저 떠올랐고, 덕평의 더크로스비도 좀 떨어지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만든 티가 나더라도 주변의 산세는 어떨 수가 없을 것이니 자연에 파묻혀서 이런 식의 코스도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티박스에서 바라보니 페어웨이와 러프의 경계가 뚜렷하도록 잔디를 깎아놓아서 반듯한 모양이었고, 비교적 넓어보여서 편안하다. 곳곳에 암반을 노출시켜놓았던데 보통 그러면 초창기에는 주변에 나무나 풀이 덜 자라서 지저분하기 마련인데 여기는 상태가 좋았다. 암반과 벙커가 초록의 잔디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광경은 주로 파 3 홀들에서 볼 수 있어서 굳이 시그너처 홀을 꼽으라면 숏홀들 중에서 골라질 것이다. 후반의 B 코스에서는 커다란 호수를 돌아나가는 4번과 5번이 근사했다. 올해 개장했음에도 잔디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좋은 곳으로 옮겨놓고 치세요 그런 얘기를 들어야했던 어디와는 사뭇 달랐다.

다들 아시겠지만 경기도 여주 쪽에는 골프장이 많고, 대개 어느정도 수준은 된다. 얼마전에 운동을 같이 했던 변호사 지인이 얘기하기를 당신이 검사 시절에 여주지청으로 발령받으면서 크게 결심한 것이 (재임기간중에) 골프를 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는데 관할구역이 여주, 이천, 양평이었다니까 그럴만도 했을 것이고,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참기 힘든 유혹이 많았을 것이다. 이쪽 동네에는 그저 골프장이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 감당할 수준의 퍼블릭부터 이게 무슨 돈지랄이냐 싶을 정도의 고급 회원제까지 즐비하니 주말마다 차량들이 넘쳐난다. 루트 52는 지금 정도라면 딱 중간쯤? 페럼이나 자유 cc 정도의 수준은 될 것 같다 (서울에서 십여분 더 운전을 감수한다면 용인쪽 웬만한 골프장들보다는 낫다고 본다). 많이 어렵지도 않아서 더 좋게 느껴졌을 수도 있으나 경치가 좋았고, 직원이나 캐디의 응대하는 태도도 이번 방문에서는 맘에 들었다. 초창기여서 그러려나, 좀 알려지면 가격을 올린다거나 반대로 손님을 많이 받아서 상태가 나빠진다거나 그런 변화는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