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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골프는 하루에 18홀이 고작이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둘째날은 숙소에서 1시간 이상 운전해서 가야하는 (숙소를 차라리 이쪽으로 잡을걸 후회했음) 도쿄만 컨트리클럽 (東京湾カントリークラブ)이다. 이 골프장도 버블시대에 만들어졌던 27홀 회원제인데 설계자로 유명한 요시자키 미츠오 (吉﨑満雄) 씨가 도쿄만관광이라는 회사를 직접 설립해서 개장했다가 망했다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27홀의 이름은 구라나미/나가우라/쿠보타 (蔵波/長浦/久保田) 코스라고 하며, 우리는 구라나미/나가우라의 순서로 플레이했다. 이름만 들어서는 도쿄만의 바다가 보이는 골프장이다 싶지만 실제로는 (바다와 가까울 뿐) 산악지형 코스다. 여기는 원그린 시스템인데도 그린이 전반적으로 작고, 대신에 주변에 벙커나 해저드 등은 적은 편이어서 어제의 히가시치바 컨트리클럽보다는 쉬워보였다.

그런데 시작하는 구라나미 1번부터 개울을 넘어가는 파 3 홀이다. 앞뒤로 팀들이 가득한 가운데 이렇게 시작하면 몸이 풀리기도 전에 아이언 티샷을 해야하므로 멘붕을 겪는 편인데 다행하게도 공이 죽지 않고 그린 입구의 벙커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퍼팅 빼고) 샷이 벙커샷인데 무릎을 낮춘 상태에서 모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휘두르면 무조건 백스핀이 걸리기 때문에 그린에 공을 잘 세울 수 있다. 비교적 쉬운 파 4였던 2번을 지나 3번도 파 3라서 여기까지가 일종의 워밍업이라면 이후 홀들의 디자인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더블 도그렉 롱홀인 구라나미 5번은 처음에 티박스에서 보기에는 좁아보였어도 또박또박 치면 쓰리온이 가능하게 만들어져있어서 설계자의 센스가 엿보였다. 역시 도그렉과 높낮이로 핸디캡을 더하는 7번도 세컨 샷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고 좁아서 나는 잘라가서 포온을 노렸는데 긴 클럽으로 질렀던 동반자는 의외로 짧은 거리가 남아서 초행길인 입장에서는 보기를 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 홀이었던 나가우라 9번처럼 대각선 페어웨이가 그린까지 이어진 디자인은 실력에 따라 돌아갈 수도, 용기를 낸다면 계곡과 숲을 넘어 그린쪽으로 질러갈 수도 있게 해놓아서 잘 만들어진 홀이라고 본다. 다만, 평일의 오전 10시 티타임이었어도 중간의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6시간이 넘게 걸린 것은 이제 일본의 골프열기도 대단해진 걸까 싶게 심했다. 좋은 날씨와 코스의 풍광이 아니었다면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파 3 홀들에 매트가 깔린 것도 아쉬웠다.

위에서 숙소를 (퍼블릭 골프장이 적은) 먼 지역에 잡아서 후회했다고 했지만 이번에 지낸 곳은 소위 치바 뉴타운이라고 불리는, 인자이 시에 있는 단독주택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난생 처음으로 예약한 숙소인데 신축 2층집에 주차할 공간도 넓으면서 가격은 웬만한 (내가 해외에 오면 묵는) 호텔의 절반 수준이다. 그냥 가정집이라서 밥을 해먹거나 빨래를 하는 등은 물론 가능했고, 무엇보다도 깔끔하고 이뻤다. 세세한 청결도는 고급 호텔보다야 떨어질 것이고, 침대정리를 매일 해준다거나 하는 서비스는 없으나 이런 정도라면 앞으로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airbnb를 우선 고려해봐야지 생각했다. 조용한 주택가라서 밤이 심심할 수도 있는데 해외 골프여행에서는 편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처럼 술 안먹고 일찍 자는 사람에게는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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