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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주변 어디에나 이제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십여년쯤 전에 내가 (잠깐) 이쪽으로 가서 살아볼까 알아보던 시기에 가장 떠오르던 지역이 동쪽의 Fullerton에서 요바린다에 이르는 오렌지카운티였다 (최근에는 동쪽의 Chino 아니면 더 가서 San Bernadino 카운티에도 한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쪽에 사시는 지인들도 여전히 있어서 가끔 얘기하다보면 이 골프장이 종종 언급되었는데 가격이 백불이 좀 넘어가길래 그만한 가치가 있으려나 고민했지만 그래도 한번은 가보기로 했다. Cal Olson과 함께 Payne Stewart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페인스튜어트는 PGA 투어에서 한때 날리던 이름이었고, 한창 전성기 시절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때문에 그가 설계에 관여한 골프장은 오직 여기 하나뿐인) 분이다. 이 골프장에 들어서면 그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골프장은 만들어진 사연이 좀 특이하다. 놀라운 것은 여기를 (석유를 퍼내는) 원유회사가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게 왜 놀랍냐고 묻는다면,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이 골프장 곳곳에서 석유가 (정확히는 셰일가스) 나오고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시추공과 파이프라인으로 가득했던 지역에 흙을 덮고, 호수를 만들고, 석유생산과 관련된 시설은 플레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나무들 사이로 숨기는 등의 노력을 통해 탄생한 코스다 (셰일가스 채굴에 관한 기사 참조). 그래도 플레이하다 보면 숲으로 들어간 공을 찾다가 쿵쿵 소리를 내며 석유를 캐내고 있는 모습이 (derrick이라고 부른다고 함) 보인다. 이런 이유로 코스는 전형적인 산악지형이고, 좁은 페어웨이에 타겟골프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홀들은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잘 구분되어 있다.

우리는 근처에 살면서 자주 온다는 미국인 한명과 조인했는데 대단한 장타자임에도 드라이버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전반에서는 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야 물론 드라이버를 안치면 블루티에서 플레이가 어렵기 때문에 썼는데 공을 여럿 잃어버리며 힘든 라운드를 했다. 언덕 말고도 곳곳에 연못이 있었고, 특히 클럽하우스 앞에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아름다운 9번과 18번은 특히 어려웠다. 전반에서는 고저차가 큰 3번 파 3 홀과 저멀리 주택가의 경치를 내려다보며 치는 7번이 인상적이었다. 그린은 크지 않으면서 자잘한 굴곡이 많아서 어려운 편이다. 후반으로 접어들면 더 길어지기 때문에 드라이버를 쳐서 공을 잃어버리고, 드롭해서 두번이나 세번만에 그린으로 올라가는 식의 연속이었다. 티샷이나 어프로치나 뭔가 불편한 각도로 겨냥해야 해서 힘이 들어간다. 게다가 주말 오전이었기 때문에 밀리기까지 하는 힘든 라운드였다.

벙커에 몇차례 들어갔는데 탈출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페어웨이 벙커는 입자가 곱고 하얀 색의 고급 모래가 채워져있었고, 그린사이드 벙커는 누런 흙같은 모래여서 대체 왜 이렇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잔디의 상태는 겨울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어찌나 물감을 많이 뿌려댔는지 그린에서 공을 집으면 초록색으로 물들어있었고, 아무튼 언제 다시 온다면 좀 잘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라운드를 마쳤다. 물론 여기가 오렌지카운티의 한복판임을 감안하더라도 백몇십불을 지불한다면 굳이? 그런 생각을 했는데 가격을 떠나서 이번 골프여행을 LA 인근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오전 티타임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우리나라 골프장들도 가격을 많이 올렸으나) 판데믹 이전에는 주말에도 50불 정도였던 코스들이 지금은 백불 밑으로는 찾아볼 수도 없다. 비단 그린피만의 문제는 아니라서 장비, 골프공, 그밖에 물가가 다 올라버렸다. 급여도 물론 올랐겠지만 이래서는 다시 골프 인구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 다시 망하거나 가격을 내리는 골프장들이 생길텐데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백몇십불을 받아도 티타임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많으니 당분간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도 한동안은 미국을 제껴두고, 일본이나 동남아 등의 싼 그린피를 찾아다닐 생각이다.


이 아저씨가 Payne Stew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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