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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서쪽으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에는 숨은 보석같은 골프장들이 널려있다. 골프잡지나 언론에서 칭송받는 코스도 아니고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지만 그러니까 "숨은" 보석이다. 짧은 경험으로는 그중에서 옥석을 가리기 힘들지만 블랙스톤 협곡에 자리잡은 (실은 이 지역은 미국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지역이어서 국립공원이기도 한데 블랙스톤 리버밸리의 역사적 의미는 위키피디아 참조) Blackstone National도 최고 골프장들 중에 하나다. Rees Jones가 깊은 산속에 설계하였고, 잘 관리되고 고급스러운 이 골프장을 $50-60 정도에 칠 수 있다면 한시간 정도의 운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서너번쯤 가보았던 기억인데 언제 다시 보스턴을 방문하게 되면 꼭 가볼 생각을 하고 있다. Rees Jones는 다들 아시다시피 Robert Trent Jones의 아들인데 메이저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들의 리노베이션을 많이 맡아서 유명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그의 코스를 (형제인) RTJ 주니어가 만든 코스보다 더 좋아한다. 블랙스톤 내셔널은 특히나 Rees Jones가 직접 부지를 고르고, 설계까지 했다고 하니까 그의 시그너처 코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요즘은 미국에서도 대도시에 가까운 골프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천연잔디 드라이빙 레인지가 있다. 물론 티타임을 예약하면 무료이고,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럴 의향만 있다면 미리 가서 실컷 연습할 수도 있다. 잔디를 움푹 파내면서 연습공을 치려면 (혼나는 거 아냐? 이런..) 처음에는 조금 용기가 필요한데 실력은 초보지만 뭔가 프로같은 기분도 느껴볼 수 있다. 연습공을 치다가 시간이 되면 스타터가 부르러 오는데 점차 산속 깊숙히 들어가며 공을 치다보면 (정말 고요하다) 여기는 다른 세계인가 싶어서 마냥 행복해지는 코스다. 그래봐야 너구리나 사슴 정도지만 야생동물도 홀마다 만나게 되어서 오후 늦게 혼자일 때는 좀 으스스하기도 하다. 수준이 다른 퍼블릭이지만 외진 입지를 감안하면 많이 비싸다. 심지어 클럽하우스의 치즈버거는 $12이나 하는데 이런 미친 가격은 거의 미국에서도 탑이 아닐까 싶다. 백을 짊어지고 걸으면 카트비를 빼주지만 험악한 산악지형이라 걷기는 힘들다. 그만한 가치는 충분한 골프장이지만 제가격을 내고 가기는 좀 그렇고, 대신 메일링리스트에 가입했더니 종종 프로모션 이메일이 날아와서 한번은 4인이 $80에 친 적도 있다. 레스토랑 외부의 파티오에서는 18번 홀의 전장이 그대로 아래로 보이는데 한시간 정도는 그냥 앉아서 멍때리고싶어지는 그런 장관이다.

이번에 다시 보스턴을 방문하면서 여기는 꼭 다시 가봐야지 했는데 오랜만에, 그리고 여러 골프장들을 겪어본 경험이 쌓이고 보니까 Rees Jones의 (좀 뻔한) 스타일이 느껴졌다. 양쪽의 숲으로 핸디캡을 만들고, 길고 넓은 페어웨이라서 티샷을 좀 멀리 쳐야하며, 그린 주변에 함정을 잔뜩 만들어놓았다. 기대치로만 보면 Crumpin-Fox 이상이었는데 소감은 약간 실망. 그래도 평일임에도 풀부킹이었고, 미국 골프장답지 않게 전반과 후반으로 동시에 출발하게 해놓아서 우리는 10번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아래의 사진은 1번 홀부터 나열함).

10번과 11번은 코스의 다른 홀들과 다르게 나무가 보이지 않는 링크스 분위기였다. 오르막에 좌측의 벙커를 끼고도는 10번과 이 골프장에서 유일한 워터해저드를 넘어가는 파 3인 11번을 먼저 돌았더니 여기가 내가 기억하는 Blackstone National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그린에 올라서면 커다랗고 울퉁불퉁한데다가 무지 빨라서 어려운 코스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12번은 내리막 파 4인데 그린으로 갈수록 점차 좁아지게 설계되었고, 그린의 전면에는 커다란 벙커가 자리잡고 있어서 아이언 어프로치가 정교하지 못하면 무지 어렵게 느낄 것이다. 후반에서는 13번이 가장 인상적인 홀인데 190야드에 달하는 파 3 홀이고, 우측에는 숲이 좌측에는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린은 뒷쪽으로 갈수록 내리막이라 그린 입구로 공이 떨어지지 않으면 뒷쪽으로 흘러가버린다. 홈페이지에는 이 골프장의 시그너처 홀이 15번이라고 나와있던데 이 홀은 핸디캡 1번이기도 하다. 티박스에서 200야드는 쳐야 페어웨이가 나오지만 심한 내리막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고, 거기서 100야드 정도를 가면 웨지로 어프로치하기 좋은 장소가 나온다. 장타자라고 좌측의 언덕을 넘겨서 치거나 세컨샷으로 그린을 직접 노린다면 동그란 원통의 꼭대기에 자리잡은 형상의 그린 주변으로 공이 흘러내려가기 쉽고, 그러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한다. 비슷한 형태의 홀이 우리나라 어디엔가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시각적으로나 공략으로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블랙스톤 밸리의 산세를 느끼면서 남은 홀들을 돈다.

후반부터 돌았더니 전반의 홀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 Rees Jones 코스다운 어려움은 심한 오르막인 4번부터 시작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흔한 형태라 길기만 할뿐 그저 그렇다. 여기서 설계자의 취향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긴 홀에서는 그린 주변에 벙커가 없어서 확실히 장타자를 우대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5번이 나는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올라온만큼 다시 내려가니까 주변의 산세와 경치를 느끼며 티샷을 한다. 티샷이 멀리 나가면 그린 근처까지 공을 보내는데 굳이 모험하지 않아도 두번만에 그린으로 올라간다. 꼭 다시 와보고팠던 골프장에서 소원성취한 기분이었고, 공도 비교적 잘맞았는데 기억에서처럼 엄청난 코스는 아니었구나 살짝 실망한 면도 있다 (이날 오후에는 Cyprian Keyes를 다시 갔는데 거기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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