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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쯤 전에 내가 경북 문경에 살던 당시에는 안동 인근으로 종종 놀러다니곤 했었다. 물론 당시에는 골프장 따위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기껏 가봐야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 등등을 찾아다녔는데 드디어 다시 (골프를 빙자하여) 방문한다. 원래는 경상도에 사는 강** 선생을 만나러 통영으로 가는 일정이었지만 토요일에 강 선생이 경주로 가야한다고 해서 절충안이랍시고 나온 것이 안동에서 만나 일박이일 골프를 치고는 헤어지자는 것이었다. 한명은 진주에서, 한명은 대구에서 그리고 둘은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좀 이상한 일정이지만 새로운 골프장에 가본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들떴다. 서울에서 두시간 반정도를 달려 도착한 첫번째 목적지가 바로 남안동 cc였고, 다음날 오전에 치는 곳이 안동 휴그린이다. 여기는 대체 누가 설계했는지 알 길이 없는 퍼블릭으로, 주인이 경상북도관광공사라니까 일종의 municipal (公立) 코스다.
오전에는 좀 추웠는데 금방 더워지는 날이다. 첫번째 홀에서 바라보기에는 퍼블릭답게 넓직하고 평탄하며, 그린도 동그랗고 커다랗다. 넓다고 공이 똑바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잡생각이 덜하기 때문에 좀 수월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넓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어쩔수없는 산골이라 이후에는 언덕을 사이에 두고 친다거나 페어웨이 한쪽에 해저드가 있는 등 나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놓았다. 긴 해저드를 넘어야 티샷이 사는 2번부터 완전히 다른 코스가 되었는데 어제 친 남안동 cc보다 훨씬 어렵다. 티샷은 대개 내리막이라 괜찮은데 숏게임이 여간 좋지 않으면 파가 어렵다. 커다랗고 굴곡진 그린에 경사도 심해서 요즘 들어서 이렇게 쓰리펏을 많이 한 날도 없을 것이다. 스코어가 별로였지만 그래도 밋밋한 코스보다 날이 선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즐겁게 친다. 솔직히 이 코스를 누가 디자인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근사하다. 경상도 골프장에 오면 온 사방이 억센 사투리로 시끄러운데 캐디조차도 방정맞을 정도로 떠든다. 그래도 좋은 날씨에 부담없을 동반자들과의 라운드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티샷이 얼마전 애틀랜타를 다녀온 후부터 곧잘 맞아주는데 임팩트에서 머리를 뒤에 두고 올려치는 요령이 생겨서인 것 같았다. 그러나 드로우로 잘 맞았어도 거리는 역시 짧아서 세컨샷을 여전히 제일 먼저 한다. 그린에 공을 올리기에 별로 지장은 없을 비거리지만 내 몸뚱아리로는 이정도가 최선인가 싶어서 새로 드라이버를 장만할까 생각을 몇주째 한다. 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내 방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수많은 드라이버들이 증명해주지만 그래도 온갖 신기술로 역사상 최고라는, 압도적이라는 신제품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그래도 누가 봐도 시니어용 티가 나는 황금빛 제품들은 어째 창피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