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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JNJ

hm 2020. 4. 9. 13:47

원래는 지금쯤 캘리포니아의 어디선가 공을 치고있어야하는데 우한 코로나 사태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원래 골프장이라는 곳은 (취미라는 것이 대개 그렇지만) 현실도피의 측면이 있는데 힘든 일상이든 가정사든 일단 공을 치고 잔디를 밟는 몇시간 동안은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의 공포도 골프장에서는 잊혀지는 법이니까 사회적 거리두기니 어쩌니 해도 골프장만은 안전지대로 남아있길 바란다. 철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나 (그리고 집에서도 이 시국에 어딜 가냐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아무튼 억울하고 안타까와서 국내에서라도 일박이일 골프여행을 가보기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 좀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할 수도 있었으나 미국의 대신이니까 멀리 가보자 그랬다. 차 한대에 네명의 짐을 싣고는 교대로 운전해가며 4시간 반을 달렸다. 전라남도 장흥이라는 동네는 난생 처음으로 와보는 것인데 생각보다도 촌동네였지만 저녁에 근사한 한정식을 먹을 기대도 했다.

 

여기는 김명길씨와 David Dale이 설계한 27홀 코스로, 우리는 일박이일 일정이므로 정/남/진 코스를 모두 돌아볼 수 있었다. 양잔디가 깔려있고, 기후가 따뜻해서 겨울철에도 상태가 좋다는 소문이었는데 외진 입지에도 불구하고 내장객이 많아보였다. 이틀간 골프에 숙박까지 해서 인당 20만원 정도였으니 (물론 카트와 캐디피는 별도) 가성비도 최고였다. 서울에서 거의 다섯시간 운전해서 첫날은 정/남 코스로, 둘째날은 진/남 코스의 순서로 (이틀째 날에는 정코스를 닫은 상태) 돌았다. 과연 확트인 경관에 날씨도 좋았는데 실은 나는 전라남도 골프장에 거의 가본 적이 없지만 이전에 파인비치에 감동했던 바 있어서 그정도는 되겠거니 했었다. David Dale의 코스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아시아나 동코스 정도만 된다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내 결론은 나인브릿지의 저렴한 버젼 정도가 되겠다. 드라마틱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특기인 줄 알지만 여기 장흥이라는 동네가 우리나라 어디의 산악지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많이 울퉁불퉁하지는 않아도 기울어진 페어웨이에, 그린쪽으로 가면서 벙커가 많이 보이는데 플레이에 핸디캡을 준다기보다는 그저 경치를 위해 초록의 캔버스에 흰 무늬를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서울 근교의 골프장들에 비하면 푸른 잔디였지만 여전히 나무들이 앙상해서 방문한 시점이 4월초라는 것이 아쉽다.

 

페어웨이나 러프나, 그리고 그린이나 모두 평평한 곳이 없어서 살짝 느리게 진행되었는데 그래도 쉬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18홀에 4시간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홀들이 다 평범한 한국 골프장이라도 크게 흠잡을 것도 없었지만 몇몇 홀들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게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정코스 4번은 호수를 따라 돌아가는 우도그렉 파 5인데 내가 장타자라면 투온도 노려보겠으나 써드샷을 그린에 올려놓고 천천히 걸어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남코스 4번도 파 5인데 티박스가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골프장의 전경과 저 너머의 평야를 내려다보며 티샷을 한다. 진코스에서도 파 5인 4번과 6번 아일랜드 파3가 근사했는데 요즘에는 몇몇 골프장에서 비슷한 홀을 볼 수 있지만 여기는 주변의 경치에 대비해서 물위에 떠있는 그린을 바라보는 맛이 있다. 즐거운 골프였는데다가 클럽하우스에서 먹은 (패키지에 포함된) 조식이나 편안했던 골프텔도 맘에 들었다. 굳이 흠을 잡는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풍광과 한꺼번에 몰리는 내장객으로 붐볐던 샤워실. 샤워기의 수압이 약했고, 여기저기 때수건이 널려있어서 지저분한 모습은 좀 아쉬웠다. 오랜만에 90대 타수를 기록해서 역시 어려운 골프장이구나 했는데 그린 주변이 어려운 코스라 그럴 것이다. 티샷의 난조로 어찌어찌 숏게임으로 막은 첫날이나 모처럼 드라이버의 감이 살아난 이틀째나 스코어가 똑같이 90타였으니 골프라는 게 뭐가 잘되면 뭐가 안되는 그런 운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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