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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의 이틀째는 Klub Golf Bogor Raya 골프장이다. 여기는 내 개인적으로 뜻깊은 장소인데 2012년에 교통사고로 무릎이 부러져서 꽤나 오랜기간 목발 신세를 지며 내가 다시 건강하고 골프장에 설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방문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2013년 1월이었는데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비도 세차게 내렸지만 그저 두발로 서서 스윙할 수 있다는 기쁨에 매일 36홀씩 이틀을 골프만 쳤다. 더운 지역에서 비가 내리면 시원할 것으로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는데 땅에서 뜨거운 공기가 마치 한증막처럼 올라오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덥다. 그리고 여기는 내가 난생 처음으로 가본 동남아 (사실 자카르타는 적도 아랫쪽에 있는 도시라서 동남아라고 부르기는 뭣하지만) 골프장이기도 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티샷한 첫 홀의 느낌만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우습게도 이번에 다시 가니까 골프장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했던 이상으로 좋은 코스임을 깨닫게 되었다.
Graham Marsh가 평원에다가 설계한 코스는 일단 이국적이다. 페어웨이 양측과 그린 너머에 울창한 나무들이 열대지방 골프장에 왔구나 느끼게 해준다. 주말이라 그런지 프로샵에 한국말하는 이들이 바글거리길래 서둘러 1번 홀로 갔더니 다행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도 오비가 나겠나 싶게 넓직한 1번 페어웨이에서도 공이 옆으로 넘어가기는 하더라. 약간 흐린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데 공까지 그럭저럭 맞아주니까 보고르라야에 대한 내 평가도 한껏 업그레이드. 내가 Graham Marsh 코스를 (여기 말고) 이전에 쳐본 적이 있었나? 잘 모르겠는데 일단 코스를 지루하지 않고 잘치거나 못치거나 즐거운 기억으로 귀가할 수 있게 해주는 설계자인 것 같다. 특히 후반으로 접어들면 약간의 날이 서는 느낌으로 신중한 공략을 요구하는데 자칫 만만하게 보고 공격적이 되면 그린 주변에서 스코어를 다 까먹게 된다. 내게 압권은 화이트티 티박스에서 200미터 정도에 개울이 가로지르는 14번이었다. 티샷이 쪼루가 나는 바람에 웨지로 레이업하여 쓰리온이 되었지만 해저드 근처의 내리막에서 엉거주춤 그린을 노렸던 동반자들은 낭패를 보았다. (말은 비록 통하지 않아도) 워낙 싹싹해서 이쁘게만 보였던 캐디들, 끝나고 마신 시원한 과일주스에 생각지도 않았던 노천 샤워장까지, 완벽한 골프장에서의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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