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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다마이 인다나 로얄 자카르타를 가려고 했는데 이 동네에는 예약이라는 개념이 없는지 조식을 먹고 출발하면서 골프장으로 "지금 간다"라고 전화하니 오늘은 안된다는 대답. 결국 몇군데 전화해서는 즉흥적으로 정한 행선지가 Sentul Highlands 골프장이다. Gary Player가 설계한 코스라고 하며, 골프장 천지인 Bogor에 있다. 부동산 업자가 대단위 주택단지를 팔기 위해 조성하는 그런 식의 코스라서 이런 경우 웬만한 수준은 뛰어넘는 골프장이라는 게 내 경험인데 여기도 주변의 코스들과 마찬가지로 아시안투어의 대회도 종종 개최했었다.

비교적 한산한 일요일의 고속도로를 40km나 달려 골프장에 도착하니 도대체 자카르타에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살고있는 걸까 궁금할 지경으로 온 사방에 한국말이다. 그제도 어제도 비가 내렸지만, 그리고 가는 내내 엄청난 비가 내렸지만 희안하게도 우리가 18홀을 도는 동안에는 쨍쨍하다가 끝나서 점심을 먹자면 폭우가 쏟아졌으므로 이날도 괜찮으려니 했다. 힘들었지만 비는 맞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인데 30도가 넘는 기온에 습도가 무지 높은 날씨였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하의 날씨에서 탈출하여 적도 근방까지 내려오니 사우나 속에서의 라운드라 기다리는 셈이다. 매일 36홀을 돌 기세였는데 결국 하루에 18홀만 간신히 마치고는 지쳐버린다. 무더위도 힘들지만 연신 흘러내리는 땀이 눈에 들어가서 따가워지면 최악이다.

그래도 여기는 내가 좋아하고 스코어도 잘 나오는 Gary Player 디자인이다. 티샷과 세컨샷 모두 쉽지 않고, 수많은 해저드와 벙커가 그린을 가로막는 어려운 코스지만 이상하게도 즐거운 스타일이다. 언듈레이션이 심하고 커다란 그린은 여간 잘 치지 않고서는 온그린된 공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나는 이제 미들아이언 거리 이내에서는 곧잘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게 여전히 문제다. 역시 멘탈의 문제인 것이 넓은 페어웨이를 마주하면 드라이버샷이 똑바로 멀리 날아가는데 눈앞에 해저드가 보이거나 페어웨이가 좁아보이면 우려가 현실이 된다...ㅠㅠ Sentul Highlands에서는 티샷도 아이언샷도 잘 맞아주니까 공치는 재미가 있는데 몇년전에 처음 이 동네에 왔던 당시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싶어 즐거웠다. 쓰리펏이 난무했지만 아마추어에게 골프란 스윙이지 스코어가 아닌 것이다.

연습장에서 샷을 해보면 영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런 경우 막상 코스로 나가면 무리하지 않게 되어서인지 그럭저럭 잘 맞는다. 게리플레이어 코스에서는 캐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저기 벙커까지의 거리를, 해저드를 넘길 캐리 거리를, 핀을 노리기에 가장 적절한 각도 등을 끊임없이 물어보고 생각해야 한다. 계절이나 동네를 고려하면 페어웨이나 그린의 관리상태도 최상급이다. 내장객이 넘쳐나 캐디가 부족할 지경인 날이어서 거의 모든 홀마다 십분 이상씩 대기한 덕택에 5시간이 넘는 라운드는 사실 좀 지치긴 했다.

이 코스는 홀들이 다 독특하지만 역시 파 5인 6번 홀이 시그너처 홀이라고 할만하다. 푸른 하늘을 노리고 티샷을 하는 블라인드 홀이고, 언덕을 넘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산세를 배경으로 그린이 보인다. 여기서 나는 쓰리온 쓰리펏을 했는데 전혀 불만이 없다. 다른 인도네시아 코스와 좀 다르게 보인 점 하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주변과 전혀 위화감이 없게 만든 것이다. 아마도 원래부터 대규모 주택단지로 기획된 지역이라 가능했지 싶은데 골프장 하나쯤은 더 만들어도 좋겠다 싶었다. 후반의 12번 홀에서도 주변 산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이름 그대로 고원지대 코스이고, 자카르타에서 조금 멀다는 이유로 이런 멋진 골프장이 착한 가격이다. 강을 따라 돌아나가는 마지막 세 홀도 압권. 오후 늦게서야 라운드가 끝나니 좀 피곤했으나 아무 생각없이 놀기만 하는 상황에서는 아주 기분좋은 노곤함이다. 씻고 자카르타로 돌아오는 차에서는 그야말로 곯아떨어져버렸다. 물론 그냥 호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사지에 저녁식사에 이쯤 되면 만사가 귀찮긴 한데 이제 내일이면 귀국이라는 아쉬움에 밤이 깊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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