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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미 2019년의 막바지인데 오래전 영화 백투더퓨처 2편에서 미래로 갔던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버렸다. 당시 영화에 등장했던 신기한 풍경은 지문인식이나 화상통화 등등 이미 실현되었거나 가능성이 보이는 것들이 많은데 암튼 이전보다 몸을 덜 쓰는 것이 편리함,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거꾸로 몸을 써야하는 스포츠가 점점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헬스클럽까지 몇층 계단을 올라가기 싫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서는 러닝머신으로 땀을 내는 것이 현실이다. 기껏 운동한다고 와서는 주차장에서도 문에서 가까운 자리를 잡겠다고 빙빙 돌곤 한다.
왜 이런 얘기가 나왔냐 하면 이날 방문한 자고라위 골프장은 오래된 역사를 반영하듯 걷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는 미국에서 백년된 골프장도 다녀보고 했지만 거의 걸어다녔기 때문에 나중에 만든 카트패스의 어색함 따위는 잘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카트를 타더라도 페어웨이로 진입해버리면 별 이상한 느낌은 없다. 그런데 설계 당시에는 카트를 고려하지 않았던 골프장에 나중에 길을 만들면 뭔가 어색해진다. 카트를 길에 정차하고서 클럽 두서너개를 챙겨서는 공이 있는 곳으로 다녀올라치면 쉽게 지친다. 이래서는 그냥 아예 걷는 편이 더 낫다.
아무튼 이번 자카르타 골프여행의 이틀째는 어제의 Emeralda에서 보고르 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나오는 곳이다. 자카르타 인근에서 소문난 몇몇 골프장들 (Rancamaya, Bogor Raya 등등) 사이에서도 나름 선호된다는 자고라위 골프장이다. Peter Thomson과 Michael Wolveridge가 함께 일하며 만들어낸 명코스이며, 뉴코스와 올드코스,거기에 9홀 코스가 따로 있어서 총 45홀 골프장이다. 작년에 왔을 때는 올드코스를 돌았었고, 이번에는 뉴코스와 Z-Nine이다 (인도네시아 오픈이 뉴코스와 올드코스에서 수차례씩 열렸고, Z-나인홀 코스는 Zakir라는 이름인, 이 골프장 회장님께서 설계했다고 한다). 걷는 골프장이니 좀 널럴하려나 예상과 다르게 여기도 이제 카트를 타게 변해버렸고, 막상 가보면 여기저기 한국말이 들리는, 한국사람이 많이 찾는 골프장이구나 싶다. 가만 보면 덥고 습하고, 거기에 복잡하고 공해로 찌든 자카르타에서 살아남으려면 골프라도 쳐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제는 꽤 공이 잘 맞았었는데 저녁에 마사지를 좀 세게 받은 탓인지 다리가 아프고 몸에 힘이 없어서 티샷이 난을 친다. 공을 잃어버리기 딱 좋게 생긴 레이아웃이라 쓰리온 투펏 보기만 해도 잘하는 거였는데 라운드 전날에 푹 자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물론 스코어에 상관없이 아침먹고, 골프치고, 마사지에 맛있는 저녁식사의 반복이니 사실 불만이 있을 수가 없다.
자고라위는 위에서 말했듯이 기본적으로는 카트를 쓰지 않는 골프장이어서 캐디들은 저렇게 골프채를 둘러매고 다녔다. 나야 원래 스탠드백 둘러매고 다니던 스타일이라 가방이 가볍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거운 캐디백에 어깨끈도 부실해서 매고 걷기는 힘들어보인다. 더운 나라에서 사니까 적어도 우리보다는 더위에 익숙하지 싶은데 땀이 많은 나보다도 더 심하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뒤를 따라오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서 공 줏어오라고 시켜먹기도 어렵더라. 그래서 캐디들이 다 남자였는데 지금은 카트를 쓸 수 있으니까 여자 캐디도 많다. 여기 식당에서는 아얌깔라산 뭐 그런 이름의 닭고기 요리가 유명하다는데 닭튀김이야 어디라도 대충 맛있는 것이고, 다만 이곳의 소스가 입맛에 맞았다. 한국인이 많아서인지 메뉴에 냉면도 있다. 제철은 아닌듯 싶지만 먹음직스런 두리안도 맛볼 기회가 생겨 즐거운 하루였다.
저아래의 사진에서처럼 페어웨이 곳곳에 아이들이 숨어있다가 공이 OB가 나거나 해저드로 들어가면 그거 꺼내러 뛰어든다. 워낙 어려운 골프장이라 공도 아마 많이 찾을 것이다. 누가 골프장을 18홀로 만들었는지, Old Tom Morris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골프를 치다보면 9홀 끝나서 아쉽고 후반에는 더 잘쳐야지 했다가 15번 홀쯤 되면 집에 가고싶고 힘들다 생각이 든다. 조금 힘을 내어 아무튼 18홀을 끝마치고는 기분좋은 피로감과 성취감이 느껴지게끔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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