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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에도 골프장이 있나? 그러고보니 HSBC 여자대회를 여기서 했구나, 몇해전 송영한 프로가 우승한 대회도 싱가폴 오픈이었구나, 근데 있어도 꽤나 비쌀 거야 그런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작은 (나라 전체가 서울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지역에 25개라니 면적 대비 세계에서 가장 골프장이 많은 나라라고 한다. 회원제에 고급스런 코스들이라 많이 비싸서 교민들이나 여행객은 인근의 말레이시아 조호바루나 빈탄 등으로 넘어가서 골프를 친다는데 부킹만 가능하다면 모처럼의 라운드에 돈이 조금 들어도 괜찮다는 것이 내입장이다. 개인적으로 수차례의 싱가폴 방문으로 느낀 점은 꽤나 과대평가된 여행지이고, 선뜻 방문할 마음이 생기는 곳은 아니었지만 골프치는 목적이라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미팅으로 하여튼 가야할 사정이 생겨서 가는 김에 골프채를 들고가는데 여기저기 알아본 바 이쪽 동네는 1인 부킹을 받지 않는 것이 또 문제였다. 싱가폴에서 근무하는 이** 이사의 덕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어 (일단 두 사람이 채워졌으므로) 새벽 5시에 도착한 나는 부시시한 얼굴 그대로 마리나베이 골프클럽으로 간다.
여기가 싱가폴의 25개 골프장 중에서 유일하게 퍼블릭이라고 하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고, 설계자인 Phil Jacobs는 Ria Bintan 골프장도 만들었다고 하니 꽤 유명한 사람으로 보인다. 골프장에 들어서면서 보니까 잔디의 상태는 물론이고 저멀리 마리나베이샌즈의 마천루가 아주 근사해서 몇주전에 다녀온 송도의 잭니클라우스보다도 더 멋져보였다. 대한항공을 타면 좋든 싫든 보게되는 모닝캄 잡지에서 오래전에 싱가폴 야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추천되는 장소가 여기 마리나베이 골프장의 카페라고 했는데 오전이라 좀 아쉽지만 과연 훌륭한 경치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 이사와 잠깐 인사를 나누고는 첫 홀에서 티샷을 시작한다. 곱게 나이드신 현지인 할배 두분과 함께인데 모처럼 더운 날씨를 접하니 적응이 안되지만 불평을 해서는 안될 12월 중순이다.
모처럼 푸른 잔디를 보니까 마구 설레지만 여기는 리조트 코스임에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첫 홀부터 10번 홀과 페어웨이를 공유하지만 사이에 수많은 벙커가 만들어져 있어서 쉽지 않았다. 이런 식은 Grand Cypress 뉴코스에서 보았던 디자인인데 (실은 거기가 스코틀랜드 St. Andrews 올드코스를 흉내낸 것임) 벙커를 피하자니 왼쪽은 호수라서 시작부터 고생이었다. 네번째 홀은 650미터에 달하는 파 6 홀인데 숲을 넘어가는 티샷에 오른쪽의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페어웨이라 장타자라도 쓰리온은 위험하고, 차라리 나처럼 하이브리드 네번이 최선인 멋진 홀이다. 골프에 집중하다보니 어느덧 경치는 안중에도 없게 되어버렸다.
13번이 이 코스의 시그너처 파 3 홀이었는데 자그마한 아일랜드 그린으로 샷을 하지만 거리가 빽티에서도 120미터 정도니까 어프로치의 정확성을 시험하는 자리다. 내 첫번째 공은 그린에 떨어졌으나 뒤로 튀어서 수장되었고, 다시 친 공이 깃대 옆에 붙었으니 실상은 보기였겠지만 멀리건이라 혼자 우기기로 했다. 이날의 유일한 버디가 여기서 나온 셈이니까. 파 5인 마지막 홀도 싱가폴에서의 내 첫번째 라운드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었는데 양쪽으로 워터해저드가 두번째와 세번째 샷을 부담스럽게 했지만 물을 넘겨서 싱가폴의 마천루를 향해 날리는 샷은 정말 기분좋은 마무리였다. 외부인의 18홀 비용이 (카트 포함) 싱가폴 달러로 $176, 관광객에게도 여권과 핸디캡 카드를 미리 요구하는 등 부킹에 어려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나마 여기가 싱가폴 유일의 퍼블릭 코스라는 점을 다시 상기해야한다. 나는 내일부터는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Johor Bahru)로 넘어갈 예정인데 미리 현지의 에이전트에 비용을 다 현금으로 지불하긴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까 출장오는 이들은 호텔을 통해 다 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모양이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런 식으로 방문하고 싶다.
여담으로, 2015년 R&A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보다 (18홀 기준으로 422개) 골프장 갯수가 더 많은 나라는 미국 (14,518개), 영국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까지 해서 2,934개), 일본 (2,251개), 캐나다 (2,232개), 호주 (1,538개), 독일 (706개), 프랑스 (612개), 남아공 (484개), 스웨덴 (464개), 중국 (447개) 등이다. 태국이나 필리핀 등은 순위에 끼지도 못하는데 그보다 독일, 프랑스나 스웨덴에 골프장이 저렇게나 많았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숨이 붙어있는 한 하나라도 더 많은 골프장을 방문하는 내 포부는 우리나라 골프장도 다 가보지 못하고 끝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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