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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여행의 첫번째로 선택된 이 골프장은 공항에 내려서 가장 가까운 18홀 정규코스중 하나다. 종종 들르는 어느 미국사람 블로그에서는 여기를 핵전쟁 이후의 골프코스 모습이라고 혹평했는데 경험상 비행기에서 내린 첫 날은 시차적응과 몸풀기 수준이지 아무리 집중해도 골프도 경치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깝고 저렴한 곳으로 선택했다. 대한항공 비행기가 오전 9시 반에는 LAX 공항에 내린다고 해도 네 명이 입국수속에 짐을 찾아 렌트카까지 빌리면 11시가 될지 12시가 될지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순조롭게 공항을 나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인앤아웃 햄버거에 들렀다가 십분 거리의 Links at Victoria에 도착했다. 여기는 William Francis Bell이 설계하여 1966년에 개장한 시립 골프장으로, 이후 Forrest Richardson이 리노베이션을 했다고는 하나 그저 평지에 잔디를 드문드문 심어놓은 수준이라 연습장에 나선 기분으로 친다. 골프장이 자리잡은 위치부터가 삭막한 공장지대라 (힙합의 발원지로 유명한 우범지대 Compton 시에서 가장 가까운 골프장이 여기) 잔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분위기.
부킹을 12시로 했는데 이게 핫딜 요금으로 잡은 거라서 10시에 도착한 우리는 나갈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을 했다. 다행히 귀찮다는듯이 카트의 키를 꺼내주는 프로샵 할아버지 덕택에 바로 나갔는데 손님이 적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도 첫번째 홀에 서니 앞에 카트가 바글바글해서 역시나 장사는 입지가 중요하구나 느꼈다. 거의 모든 홀들이 똑바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형태로 조성되어있고, 나름 링크스라 산도 나무도 없어서 앞의 팀이 아니었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헷갈렸을 것이다. 페어웨이가 평평하고 단단해서 잘 맞는 공은 한없이 굴러가는데 막상 가보면 옮겨놓고 쳐야할 수준으로 잔디가 없다. 거의 모든 홀의 그린이 작은 동그라미에 굴곡도 없이 밋밋한데 의외로 그린만은 잔디상태가 좋아서 잘 구른다. 연습장이다 생각하고 치는 첫날이지만 정신도 몸도 피곤하여 공도 이리저리 난을 치는 날이다.
확실히 요즘에는 장기간의 비행 직후에는 피로가 오래 간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말짱한 것 같은데 은근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니까 공이 엉망으로 맞아도 괜찮지만 이날 Links at Victoria는 너무 후진 곳으로 잡았나 싶었다. 냉정히 얘기해서 누가 나보고 가본 골프장들 중에 최악을 꼽으라면 당당히 상위권이다. 5번과 6번 홀의 옆으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다름아닌 LA 공장지대를 관통하는 도로라서 소음에 귀가 멍할 정도였다), 16번 홀의 부근에는 Good Year (타이어 회사) 비행선의 착륙장이 있다. 비행선이 선회하다가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더 열심히 골프치러 다녀야지 결심했고, 그 광경이 이날 라운드의 하이라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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