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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한 모 선생은 자기가 아직은 채를 가릴 실력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을 갈 경우에는 괜히 무겁게 클럽을 짊어지고 가지 않고 렌탈을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단 한 번의 라운드를 하더라도 웬지 어색한 남의 클럽으로 게임을 망쳐버리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본다. 아무튼 골프여행이 잦아지면서 예전에 이베이에서 30불 정도에 샀던 항공백은 좀 괜찮은 것으로 바꿔볼 의향은 있다. 상하이에서 둘째날 찾은 명인 골프장은 3월에 필리핀에서 방문했었던 Lakewood 골프장을 설계한 Neil Haworth가 만든 27홀 회원제 코스인데 찾아보니 이 사람은 하와이 출신의 미국인이기는 해도 주로 동남아나 중국에서 활동하는 모양인 것이 다음날 찾아간 태양도 골프장과 LPGA HSBC 챔피언십이 열리는 서산 (Sheshan) 골프장도 역시 Robin Nelson & Neil Haworth 설계라고 자랑하고 있으니 이쪽에서는 비교적 잘나가는 설계자들이다. 여기도 상하이 시내의 호텔에서는 한시간반 이상을 가야하는데 길이 한산한 토요일 오전임을 감안하면 어제의 천마 컨트리클럽보다 더 먼 곳인 모양이다.

처음에 여행사에 문의해서 견적을 받을 때에는 너무 비싼 곳은 피할 생각이었고, 어디가 좋은 곳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그린피가 중간 정도인 코스로 골랐다. 그래봐야 평일 그린피가 천 위안을 넘어가니 웬만한 국내 골프장 수준인데 중간 정도의 가격인 천마, 명인 골프장들이 이렇게나 좋으니 더 비싼 곳들은 어떨까 살짝 궁금해진다. 으리으리한 클럽하우스에 잘 관리된 잔디... 골프장 주변에는 주택과 아파트가 즐비한데 (지금도 한창 공사중인 구역도 있다) 상하이 시내에서 꽤나 먼데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사는 모양이다. 보통 이런 식의 골프장 커뮤니티는 부동산 회사가 주택단지의 가치를 끌어올리려고 골프장을 그럴싸하게 지어서는 국제대회 같은 거 몇번 유치해서 tv에도 좀 이름이 오르내리게 한 다음 주택을 분양하는 식인데 중국 경기의 호황과 맞물려 (중국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 어떨라나 몰라도)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주말에 2인 플레이라 모르는 사람들과 조인할 예정이었으나 의외로 한산하여 우리 둘이서 출발하게 되었고, 18홀을 마치고 오후에 A 코스를 돌 때에도 우리끼리만 쳤다. 우리 앞뒤로는 그저 한국사람들뿐.

아마도 이들 설계자의 취향은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리조트 스타일인 모양으로 티박스에서 바라보는 전체 홀의 모양이 다들 근사하다. 그러나 페어웨이를 지나서부터는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 맘을 놓았다가는 자칫 홀을 망쳐버릴 수 있다. 상하이라는 지역 자체가 산지가 거의 없는 (그나마 전날 방문한 천마 골프장은 좀 산이다 싶은 지역에 위치함), 평야지대인 모양으로 곳곳의 해저드와 벙커로 핸디캡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여기도 지난 주까지는 비가 많이 왔다는데 다행히 이 날은 흐리면서도 덥지도 춥지도 않아 오전 8시 티오프 시각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클럽하우스에서 잠시 기다리다 첫번째 홀로 나갔다. 수줍게 인사하지만 아마도 거의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은 캐디와 함께 공을 치기 시작했는데 주말의 티박스를 앞으로 빼놓아서인지 블루티임에도 불구하고 홀들이 좀 짧게 느껴졌다. 티샷은 페어웨이에서 위협이 되는 벙커나 해저드를 피해서 떨어졌고, 그린을 공략하기에 적절한 위치였다. 물론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하면 가혹한 벌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모처럼만에 공이 잘 맞아준다. 티샷이 똑바로 페어웨이에 떨어져주고, 세컨샷이 그린 근방까지 잘 날아가주었는데도 스코어는 90대 중반이 나온다. 성적보다도 샷이 잘되면 기분이 좋은데 이보다 더 좋은 스코어를 기대하는 것은 내겐 과욕이겠구나 싶다. 사진빨을 잘 받는 골프장인데 날씨가 흐린 것은 아쉬웠지만 어느 홀이 최고라고 기억나지 않는 것이 많은 홀들이 다른 코스라면 "시그너춰" 급으로 아름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18홀만 친다면 (A 코스는 계속 왼쪽으로 도는 도그렉 홀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좀 심심하다) B/C 코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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