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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복건성의 하문 (Xiamen, 廈門 또는 厦门)은 대만과 가장 가깝게 붙어있는 중국 동해안의 도시라고 보면 된다. 위치 덕택에 일찍부터 대만의 자본이 유입되어 꽤나 잘사는 동네라는데 그보다는 우리에게는 겨울철 골프여행의 메카로 알려진 곳이다. 지금 보니까 골프장이 너댓군데 있는 모양인데 아무튼 내 개인적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골프를 쳐본 (소위 머리를 올린) 곳이라 꼭 다시 가보고 싶었었다. 골프채를 처음 잡아보고 일주일도 채 안된 상태에서 윗분들에게 끌려가듯 갔었고, 골프라는 운동을 하려면 자기 골프채와 공이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던 시절이라 옷가방만 챙겨서 설레설레 공항에 가서는 "니 골프채는 어딨냐?" 물음에 네? 저 그런거 없는데요? 아무튼 그렇게 머리를 올렸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당시의 기억이라고는 (지금처럼 2월 중순이었지만) 무지 덥고 힘든 몇일이었다는 것밖에 남아있는 게 없는데 동방이니 천주니 골프장의 이름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몇몇이서 따뜻한 동네에 공이나 치러 갑시다 하고서 잡은 일정인데 한국에서 두세시간이면 가고, 주말에 다녀오기에는 나쁘지 않은 위치다. 목요일 밤에 하문항공 (Xiamen Airlines)를 타면 금토일 3일간 죽어라고 골프만 치다가 올 수 있다. 스튜어디스 몇몇만 빼고는 골프채와 중년의 아저씨들로만 가득찬 비행기다. 좁아터진 좌석이라도 비행시간이 짧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고, 다만 도착해서는 끝없이 나오는 골프가방 틈에서 우리 것을 찾아내서는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밤이 깊었다.

아무튼 먼동이 트기도 전에 깨어난 우리는 아침을 먹고는 첫번째 목적지인 천주 (Quan Zhou, 泉州高尔夫俱乐部) 골프클럽으로 간다. 아마 처음 머리올린 그 시절에 가본 곳일텐데 당연히 전혀 기억에는 없다. 여기가 천주 코스코 골프장 (泉州高尔夫俱乐部)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중국의 운수기업인 COSCO (中国远洋运输总公司)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문 시내에서는 한시간이 넘게 걸리니까 한국 골퍼들에게는 덜 선호되는 곳이라는데 (여기가 지도상으로 하문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겠음) 우리 입장에서야 가이드가 데려가는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천주 골프장은 평이 꽤 좋은 곳인데 설계자가 "미국인 Craig"라고 되어있으나 그게 대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반반인 클럽하우스를 벗어나 카트에 오르니 약간 서늘한 기온에 푸른 잔디. 이 맛에 여기까지 집에다가는 일하러 간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왔다. 사실 (항공요금만 빼면) 미국 골프장보다 비싼 셈인데도 거리가 가깝고, 밤에 잠자는 거 말고도 뭔가 더 할 일이 있겠지 하는 기대로 찾는 것이다. 하문에서 좀 멀다고는 하나 여기도 무례해보이는 손님들 천지에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직원들이 첫인상이다. 클럽하우스나 식당은 물론이고 라커룸, 사우나에도 재떨이가 놓여있고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그래도 코스는 한국과 비슷하게 산도 보이고 오르고 내려가는 스타일. 겨울임을 감안하면 말라버린 페어웨이나 느려터진 그린도 참아볼만은 한데 말도 없고 무표정한 캐디는 좀 아니었다. 골프장의 상태와는 별개로 레이아웃은 실망스럽지 않았다. 초반의 몇몇 홀은 평평하고 넓어서 그냥 그랬으나 차츰 언덕으로 올라가서 보면 시원스런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블라인드 티샷도 하고, 도그렉에서 고민도 잠시 해야하며, 나무가 샷에 영 거슬리는 홀도 만난다. 화이트 티에서는 기껏 6천 야드 정도지만 피해야할 위험지역이 나무 외에도 연못, 러프, 벙커 등등 적절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쉽지 않다. 파 5는 거의 오르막이어서 야디지 이상으로 길게 느껴져서 어렵다. 이런저런 다양한 홀들이 잘 섞여있는 디자인이다. 많지 않은 동남아나 중국에서의 골프 경험상 캐디에게 뭔가를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좋게좋게 치자고 하다가 결국 후반에서 동반자가 버럭 화를 내어버리는 상황도 겪었다. 우리나라 캐디들이 워낙 능력자라 진행에 친절에 그런 것만 봐오다가 도대체 얘네를 왜 데리고나왔을까 의문이 드는 중국인 캐디를 만나면 좀 당황한다. 보면 중국인에게는 전전긍긍 열심히 하는 모양인데 말도 못알아듣는 한국사람은 그저 호구다. 아무튼 그래서 캐디없이 플레이하는 미국이 내게는 최고다.

마지막 18번 홀이 내게는 시그너처 홀인데 중간에 해저드가 있고 오르막 포대그린인 420 야드를 투온으로 버디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덕택에 천주 골프장에 대한 나쁜 인상은 다 사라져버렸다. 오후 2시경에 18홀 라운드를 마쳤어도 씻고 밥먹고 마사지받고 하문 시내로 돌아오니 벌써 저녁이다.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행복감과 함께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 동남아나 중국으로의 골프여행이다. 화려한 밤거리는 동시에 흥청망청 일탈의 유혹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기운이 딸려서 18홀에 배부른 저녁 이후에는 그냥 뻗어져서 잤으면 싶은데 일행들에 이끌려 늦은 밤까지 깨어있으려면 이게 웬 생고생이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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