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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문 골프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이쪽에서는 제일 알아주는 명문인 동방 오리엔트 (Orient, 東方高尔夫鄕村俱乐部)로 갔다가 점심식사 후에 귀국하는 일정이다. 수년간 KLPGA 경기를 개최하기도 한 동방 컨트리클럽은 Ronald Fream 설계의 27홀 골프장이다. C 코스가 아마 퍼블릭인가 그럴텐데 여행사를 통해서 오면 거의가 C 코스를 포함하게 된다고 한다. 사실 중국의 하문은 내가 처음 골프를 시작한 곳이어서 선입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기준으로 보면 겨울철 골프여행에 아주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중국의 골프비용이 너무 비싸져서 태국이나 필리핀에 비해 메리트가 없고, 하문에서 접근가능한 골프장도 기껏 서너군데 뿐이다. 겨울철 날씨가 썩 좋은 것도 아니다. 아무튼 다른 일로 하문을 방문했다가 하루 시간이 나서 골프를 치려고 한다면 유일한 선택지가 될 동방 골프장은 시내의 호텔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일요일임에도 비교적 일찍 라운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A와 B 코스는 바다를 끼고 도는 아름다운 레이아웃이고, 반면 C 코스는 산악지형이라고 한다. 어느 코스로 가더라도 오래된 골프장답게 나무들이 빽빽해서 (당연한 말이지만) 무조건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이 좋은 스코어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러프도 마찬가지인데 공이 많이 잠겨보이지 않지만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그래도 이번 골프여행에서는 공이 잘 맞아줘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좋은 이들과 함께라도 결국 목적이 골프니까 공이 안 맞으면 재미가 없다. 우리는 결국 A/C/B 순서로 돌았다. 생각외로 쌀쌀한 날씨에 첫 홀부터 더블보기로 시작했는데 호수를 돌아 바다를 끼고 돌아가는 A 코스의 2번에서는 쓰리온 투펏으로 파를 했다. 티샷과 세컨샷을 해놓고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잘 맞은 공이었다. 동방의 A 코스에서는 5번 홀이 가장 유명한데 양측의 워터 해저드를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페어웨이가 인상적인 파 5 홀이다. 어쩐 일인지 여기서도 티샷이 똑바로 잘 날아가주어서 버디, 이후의  싸이클 파의 행진이다.

후반에는 B 코스가 안되겠냐고 사정해도 안되어서 결국 C 코스로 나갔는데 바다는 보이지 않는 산악지형 코스지만 안 돌아보았다면 후회했을 멋진 풍광이다. 호수가 홀마다 있고, 주변에 고급 주택가가 둘러쳐져있는 식이라 마치 미국에 온 기분이다. 여기는 해저드 말고도 벙커가 그린 주변에 무시무시하게 벽을 치고 있어서 그린이 조금만 더 단단하고 빨랐다면 엄청 어려운 코스가 될 뻔 했다. 후반에도 공이 잘 맞았는데 트리플 보기 하나가 아니었으면 중국에서 첫 싱글을 하는줄 알았다. 아름다운 골프장에서 스코어도 좋았으니 불만이 있으면 안되겠는데 관리상태는 수많은 내장객들과 날씨 탓인지 좀 별로였다. 명성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러나 영원할 수도 없다. 골프장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는 기대치에 반비례하기 마련인데 아무튼 동방 골프장에 대한 내 평가는 좋음 정도가 될 것이다. 아주 어렵지도 않고 아름다운 코스인데 대회를 개최할 수준의 관리는 아니어서 점수를 깎아먹는다. 겨울철, 일요일 아침의 부산함도 좀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하문 골프여행일 수도 있겠는데 어째 아쉬움은 별로 남지 않는 동네다. 적어도 겨울철 따뜻한 남쪽나라 골프장의 개념에는 맞지 않았다.

처음 머리를 올렸던 하문에 재방문한 김에 (국내에서는 일년쯤 후에 부산에서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골프장에 갔던 것이 처음) 지금까지 얼마나 골프를 쳤나 세보았다. 2007년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지만 이후 몇년간은 일년에 기껏해야 서너번 잔디를 밟았으니 미국으로 연수를 갔던 2010년이 제대로 골프에 재미붙인 시점일 것이다. 이후 Golfshot이나 GolfLogix, Hole19 등의 앱으로 모든 라운드를 기록해왔었기 때문에 어디서 언제 골프를 쳤나, 스코어는 얼마나 이런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총 592회의 라운드를 했고, 방문했던 코스의 수는 258개다. 물론 하루에 27홀, 36홀을 친 날도 있고, 반대로 9홀만 돌고 말았던 날도 많다. 특히 2010-2012년 사이에는 미국에서 시도때도 없이 골프장에 나갔었기 때문에 내 라운드 횟수의 반 이상은 (그 기간동안에) 미국에서 친 것이다. 생각보다 미국과 한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골프친 횟수가 적어서 앞으로는 시야를 좀 넓혀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이나 동남아를 가본 적도 별로 없으며, 호주에서 다섯번, 유럽에서는 고작 두번 쳐본 것이 다다. 가장 인상깊었던 코스를 굳이 꼽아보자면 역시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비록 가격은 많이 비싸지만) 세계 어느 명문코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어서 가평베네스트나 제주도의 나인브릿지가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의 자연환경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할 풍광을 배경으로 하는 코스도 외국에는 있지만 역시 내가 한국사람이어서 그런지 야트막한 산과 계곡을 만나야 편안하다. 코스의 관리상태도 한국 골프장이 좋다. 물론 엄청 고급인 외국의 회원제나 유명한 리조트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으니 딱 그 수준에서의 평가다. 아무래도 너무 비싼 곳은 기회가 생겨도 주저했었는데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져서 500불짜리 페블비치라도 그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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