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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라는 나라에는 18홀 기준으로 골프장이 총 16개라고 하는데 수도인 바르샤바 부근에도 고작 서너개 정도가 다라고 한다. 그나마 20세기 초반에 지어졌던 곳들이고, 2차대전 이후에는 1992년에 건설된 이 골프장이 최초라고, 그래서 이름도 First Warsaw Golf and Country Club이다. 코스를 어렵고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Jan Sederholm이 설계했고, 원래는 대우그룹 소유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원래 폴란드 사람들은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인지 그나마 몇명 되지도 않는 내장객들이 다 한국사람이다. 바르샤바에서 하루 일정으로 회의가 있어서 골프채를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그냥 왔는데 오전에 시간이 비길래 클럽은 렌탈하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왔다. 새벽 4시에 해가 떠서 밤 9시가 넘어야 해가 지는 여름인데 골프장은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고, 구시가지에서는 30분 정도 걸린다.

실은 호텔 컨씨어지에서 전화를 부탁했을 때에는 티타임이 다 차있어서 일단 와봐야한다고 얘기를 들었다. 나야 혼잣몸이니까 (대회가 열리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 팀에라도 끼워주면 땡큐지 하고 왔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까 저멀리 잔디밭에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었다. 왼손용 클럽이 준비되지 않아서 한시간 정도 기다렸고, 프로샵에서 돈을 지불하고 나가려니까 아침식사가 포함이라는데 나야 호텔에서 먹고왔으니 커피만 마시는 수밖에... 클럽하우스에는 한국말로 떠드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두어팀 보였을 뿐이니 뭐가 꽉찼다는 건지... 덥지 않으면서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광경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1번 티박스로 나섰더니 경치는 좋은데 물이 많고 폭이 좁아보여 만만한 코스는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화이트티에 섰더니 거기가 맨 뒤라서 이게 뭐지? 했으나 (블루나 블랙티가 없다) 그렇다고 레드티로 갈 수는 없으니 그냥 친다. 그래도 예전에 헝가리에서 Pannonia 이후에 동유럽에서의 두번째 골프장인데 그때나 이번이나 기대이상으로 멋진 코스다.

경치는 아래에 사진들이 말해주듯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그런데 빤히 갈 곳이 보이는 파크랜드 스타일인데 무척이나 어렵다. 폴란드에서 골프쳐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되겠냐마는 아름답고 날카로운 디자인에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전반은 거의가 페어웨이 옆으로 호수가 펼쳐져서 부담스러운데 시그너처 홀인 7번 홀의, 물을 두번 건너가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그린피 값을 한다. 참, 그린피와 클럽 렌탈까지 해서 우리 돈으로 6만원 정도이니 여기도 택시값이 더 드는 골프장이었다. 후반의 12번 홀부터는 물이 보이지 않는 대신 링크스 코스가 되어버리는데 좁다란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전부 해저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프로 v1 한 박스를 가져왔으나 귀국길의 가방은 가벼워질 것이 분명했다. 후반에서의 시그너처 홀은 대미를 장식하는 18번인데 호수 한가운데의 아일랜드 그린으로 써드샷을 날리는 파 5 홀이다. 장타자라면 투온을 노리겠지만 140 미터씩 세번으로 파를 했으니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18홀로는 좀 부족한데? 느끼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그리고 First Warsaw (바르샤바 제일cc? ㅋ) 경험만으로 그 먼 길을 와서 하루 자고 귀국하는 일정이 다 용서가 된다.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읽은 네이버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좋아지기 시작한 1988년에는 국내에 골프장이 서른개 남짓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400개가 넘을 것이다). 유럽의 신흥 IT 강국이라는 폴란드에는 앞으로 골프의 붐이 일까?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골프인구의 감소로 고민하게 될까? NGF의 통계에 의하면 소위 열성 (avid; 한 달에 두번 이상의 라운드) 골퍼로 분류되는 숫자가 십년전에 비해 2/3 수준으로 감소하였다고 하지만 이건 미국의 경우일 뿐이다. 골프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차이가 나므로 대한민국의 avid 골퍼는 매달 한번 정도만 나가는 이들도 포함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만 봐도 골프를 즐기는 이들은 40대 이후가 대부분이고, 특히 후배들을 보면 새로 골프를 시작하는 이가 별로 없으니 우리나라도 조만간 골프장이 텅텅 비는 상황이 될 것이다. 내가 이런 거 걱정하고 있으면 사실 오지랍인데 그저 좋은 골프장에서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으면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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