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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나는 수차례 놀러도 가보고 일하러도 가보고 했었는데 거기서 골프칠 생각은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하루짜리 회의를 하러 가는데 (굳이 가야하나 했는데 마침 이때 Roger Waters의 콘서트가 프라하에서 있어서 겸사겸사~) 어디 인근에 라운드를 할만한 골프장이 있을라나 찾아보니 의외로 이 나라에는 골프장이 많은 것이다. 게다가 프라하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너댓군데의 근사한 골프장들을 발견했으니 오히려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할 지경이었다. 결국 숙소에서 15분 정도로 가깝고, 영어로 잘 꾸며놓은 홈페이지가 있는 Black Bridge 리조트를 선택했는데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나와있지 않았으나 토요일 오전에 1,800 코루나 (95,000원 정도? 온라인으로 미리 부킹하면 1,500 코루나라고 한다) 그린피는 그렇게 싼 편이 아니어서 오히려 코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경험에 의하면, 동유럽 국가들 골프장이 대개 그렇지만 (아무리 여름이라도) 오전 9시는 되어야 문을 여는데 호텔에서 느긋하게 조식을 먹으면서 우버 택시를 불렀다.

골프장으로 가면서 구글맵을 보니 원래 여기는 Cerny Most 골프클럽이라는 이름이었는 모양인데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이름을 바꾼 모양이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 별다른 문제없이 비용을 치렀고, 이 골프장에 수없이 와봤다는 두 체코인 부부와 조인을 했으며, 오랜만에 반바지에 골프백을 어깨에 매고는 라운드를 시작했다. 4월말이라 한국도 날씨가 좋은가 낮에 나가보질 못해서 모르겠는데 프라하는 이미 더운 날씨다. 코스는 예상밖으로 물도 많고 언덕을 넘어가며, 양측에 나무도 무성한 산악지형 코스에 도그렉까지 많아서 보기가 쏟아지는 디자인이다. 그래도 후반으로 접어들면 파 3인 10번부터 내리막으로 홀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화창한 하늘과 더불어 아름답고 재미있는 코스였다. 파 5 우측 도그렉인 13번 홀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티샷이 잘 가준다면 우측 언덕을 넘어 그린까지는 180미터면 간다. 하지만 페어웨이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으므로 100미터씩 끊어가는 것이 정석인데 5번 우드로 갈긴 세컨샷을 그린 뒷편에서 발견했으니 모험한 보람이 있었다. 15번도 아일랜드 그린으로 가는 짧은 파 3라서 경치로만 따지자면 여기가 시그너처 홀이다. 그린은 거의 모두가 동그랗고, 앞뒤 경사 뿐만 아니라 언듈레이션도 복잡해서 이런 게 진정한 리조트 코스냐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경치가 좋았어도 몇몇 홀을 가로지르는 고압선이 옥의 티였다. 아무튼 즐거운 한나절이었고, 이로써 유럽에서의 라운드 경험은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네군데 나라가 되었다.

여기는 체코의 어느 (유명하지도 않은) 골프장이다. 우버를 불러놓고는 클럽하우스 앞에서 담배를 안주삼아 쓴 커피를 들이키며 생각에 잠긴다. 아름답고 (토요일 오전인데도) 한적하다. 골프하는 가격이 저렴하고, 그럴싸한 코스들이 지천에 널려있음에도 이런 나라에서는 골프하는 인구가 적다. 우리나라야 스크린이라는 문화가 있어서 계속 새로운 골프인구가 유입되지만 그중에 나처럼 이 게임에 빠지는 이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금전적으로나 시간으로나 여유가 있었고, 한동안 골프 말고는 할일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행운아지만 그게 바로 골프가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골프가 어느정도의 레벨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들 경험하셨겠지만 성인이 되어 골프를 시작한 대다수는 (일부 천재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나는 믿지 않는다) 공을 쳐서 하늘로 띄우는 데에만도 수개월 내지는 수년이 걸린다. 이 운동이 자신과의 경쟁이기 때문에 매홀 양파에 공을 잃어버리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홀마다 "파"라는 목표가 정해져있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보기보다 너무 어렵다. 상급자나 초보에게나 (자기에게 맞는 티박스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목표가 똑같이 18홀에 72타라는 컨셉은 무리가 있다. 물론 어느정도 골프에 재미를 들인 이후에는 이렇게 해도해도 (될듯 말듯 하면서도) 안되는 것이 재미다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내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파를 했네 이게 버디 퍼팅이네 떠드는 동반자들 사이에서 열타째 퍼팅이 홀컵 2미터에 멈추면 오케이라고 조용히 공을 집어들곤 했던 것이다. 더 열심히 해야지 생각이 드는 이는 아마 소수일 것이고, 대부분은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비싼 돈내고 주말의 황금같은 시간에 뭐하는 짓이냐 그럴 것이다. 오늘 같이 플레이한 체코인 부부도 구력이 20년은 된다고 하는데 제대로 스코어를 센다면 둘이 합쳐 300타는 훌쩍 넘어갈 것인데 시종일관 깔깔대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게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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