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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간 함께 고생한 동반자들이 힘들어하는 내색이어서 이날은 18홀만 치자, 대신에 약간 비싸더라도 좋은 곳으로 가자 합의를 보았다. 바로 떠오른 곳이 여기였는데 동반자들중 한명과 몇년전에 왔다가 세찬 비바람으로 중단한 적이 있었던 코스였기 때문. 이름에서부터 미국 인디언의 느낌이 나는 이 골프장은 원래는 남가주 PGA 협회 (SCPGA)의 홈코스였던 시절도 있고, 한때는 한국인 소유인 적도 있었다는데 결국은 근방에서 Cabazon 카지노를 운영하는 모롱고 부족이 인수해서 (골프장으로 가는 길에 Morongo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음) 지금의 이름인 Morongo Golf Club at Tukwet Canyon이 되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인디언 부족이 소유한 카지노 골프장은 Journey at Pechanga, Yocha Dehe, Barona Creek 등을 가보았지만 대개 믿고 찾을만한 퀄리티에 다만 가격이 비싼 편인데 여기는 그나마 착한 그린피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인당 40불 정도로 무제한 골프 바우처를 팔곤 해서 하루에 양쪽 코스를 다 돌아볼 수 있었으나 이제 (골프장 입장에서) 좋은 시절이 되었기에 우리는 60불 정도를 지불하고도 한쪽 코스만 돌아야 했다. Legends 18홀과 Champions 코스로 구성된 36홀 골프장이며, 설계자는 Curley-Schmidt 디자인이다. Brian Curley와 Lee Schmidt, 이 두사람은 동업을 하기 이전부터도 아시아 각국에 많은 코스를 만들었었기 때문에 (중국 해남도와 동관의 Mission Hills가 가장 유명하다) 나름 친숙한 이름들인데 같이 회사를 차린 이후에도 여러 걸작을 만들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진출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이 바뀌긴 했으나 여전히 PGA와 좋은 관계인 모양이어서, US 오픈의 예선전이 매년 이 코스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늘 여기를 오면 추웠던 기억만 있어서 좀 단단하게 무장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였다. 몇몇 홀에서는 저멀리 만년설이 덮인 산세가 보이긴 하는데 오후에는 반팔로 갈아입을 정도로 따뜻해졌고, 바람도 별로 없었다. Champions 코스는 산세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아서 호수와 작은 언덕들을 돌아가며 치는 스타일이며, 확실히 지난 몇일간 가본 골프장들보다는 한수 위의 경치와 관리상태였다. 페어웨이 중간에 개울이 흐르는 4번 홀이 전반에서는 재미있는 레이아웃이었다. 개울의 왼쪽 페어웨이는 개미허리처럼 좁지만 벙커 뒷편의 그린을 공략하기가 비교적 쉽고, 오른쪽 페어웨이는 티샷을 잘 받아줄만큼 넓지만 세컨샷으로 개울을 넘기기가 만만찮다. 이후의 홀들도 나름 어렵고 재미있었으나 후반 나인홀이 Champions 코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매 홀마다 상당히 고민을 요하고, 티샷이 어느쪽으로 갔느냐에 따라 파냐 보기냐가 결정된다. 대표적으로 파 4인 13번은 개울을 건너가게 치면 그린까지 240 야드 정도지만 낙하지점의 라이가 엄청 어려워서 어프로치에서 타수를 까먹을 수밖에 없다. 페어웨이 왼쪽으로의 레이업이 정답이구나 싶었지만 막상 아이언샷이 떨어진 지점으로 가보니 그쪽에서는 나무에 가려서 그린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웨지로 나무를 넘겼지만 보기, 그린을 바로 노렸던 동반자들은 양파, 퍼팅을 끝내고 카트로 가면서 우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라이가 나쁜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냐, 100야드 안쪽의 평탄한 페어웨이지만 블라인드샷이냐, 몇번째 왔어도 아직도 이 홀의 정답은 잘 모르겠다. 바로 이어지는, 높은 티박스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근사한 14번도 인상적이다. 길지만 내리막이라 욕심이 나는 디자인이다. 한국 골프장에서도 그랬지만 긴 코스에서 나는 하이브리드나 롱아이언으로 어프로치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내가 신지애나 김미현도 아니고 그게 제대로 그린으로 올라갈 리는 없는 것이다. GIR을 못한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아예 세번으로 끊어갈 생각을 하면 된다. 그게 무슨 재미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비나 벙커샷으로 망쳐버리는 것보다는 보기가 훨씬 재미있다.

마지막 홀도 근사하다. 왼쪽에 물을 끼고 도는 파 4인데 클럽하우스를 향해 티샷을 하려고 보니까 물의 반대편은 (비바람에 아쉽게 우리가 돌지 못한) Legends 코스의 18번 홀이다. 같은 광경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간에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모처럼만에 Morongo를 따뜻한 날씨에 왔고, 아주 만족스러워서 36홀이었으면 했지만 이날은 한번만 치기로 했기 때문에 오전 10시 이후의 티타임을 잡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LA에서 팜스프링스 사이에서 가성비로나 코스로나 여기를 따라갈 곳은 별로 없다. 점심식사후 근방의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렀는데 내 취향이 높아진 것인지 나빠진 것인지 살만한 것이 없었다. 저렴해보이지도 않고 환율도 나쁜 시기니까 더 그랬다. 그래도 앞으로도 근방을 지나친다면 Morongo와 아울렛은 반드시 거쳐갈 루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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