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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왔다가 (남부 캘리포니아답지 않게) 폭우가 쏟아져서 뒤돌아서야 했었던 The Links at Summerly를 당시 가격의 거의 세배인 오십몇불을 지불하고 플레이했다. 이 골프장은 Cal Olson이 설계한 18홀 퍼블릭이며, 이 설계자는 우리나라에도 뉴스프링빌 등에 참여한 바가 있다. 이름부터가 링크스여서 평평하고 심심한 경치라서 맨날 산악지형 골프장만 다니던 우리에게는 좀 낯설면서 심심하다. 여기도 경기에 영향받아 부침이 많았던 골프장인데 몇년간 문을 닫았던 시절도 있었고, Links Championship at Summerly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시 링크스 앳 써멀리가 되었다. 2천년대 초반의 활황기에 대규모 주택단지와 함께 기획되었으나 하필이면 골프장이 문을 연 시기가 2008년 경제위기와 맞물려 망한 케이스. 다만 가뭄으로 인한 물부족은 큰 문제가 아니었던지 바로 인접한 Elsinore 호수의 범람으로 코스가 물에 잠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저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평지에 만들어진 골프장이라 어디를 찍어도 사진은 비슷하게 나올 뿐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저멀리 잔디가 있는 지역과 흙바닥인 곳을 구별할 수 있었으니 잔디쪽으로 치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골프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디자인이며, 대부분은 별로라고 느낄 것이다. 잔디의 상태도 별로인데다가 온갖 곳에 벙커(라고 불러야하는지 좀 의문인) 같은 모래밭이 자리잡고 있었다. 스코어카드에 보면, 로컬룰로 공을 치기 어려운 땅에서는 수리지 (ground under repair)로 간주하고 공을 옮기라고 나와있을 정도. 그린 주변의 벙커는 오히려 큰 위협이 아니었는데 수많은 발자국에 아무도 정리를 하지 않는 모양으로 지저분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깔끔하지 않은 벙커에서는 우리도 정리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도 모래의 양이 적어서 공을 옮겨가며 쳐야했다. 그나마 그린만큼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고, 빠르게 잘 굴렀다. 단단한 페어웨이와 달리 의외로 샷을 잘 받아주는 그린이었다. 이번에는 토요일 오전이라 좀 비쌌을 것이고, 평일에는 훨씬 싸지니까 돈값만큼을 기대하면 된다.

이제 오후의 라운드를 마치면 대장정이 끝나고, 귀국길에 오른다. 예전에는 36홀을 친 당일에 허겁지겁 공항으로 가서는 라운지에서 샤워하고, 밤비행기로 귀국하곤 했었는데 그 분주함이 싫어져서 하루를 더 자고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예약했다. 다음 행선지인 Golf Club at Rancho California로 이동하면서 보니까 입구부터 고급스러워보이는 프라이빗 컨트리클럽을 몇몇 지나치게 되었는데 아무나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저런 골프장이 예전에는 궁금했었으나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고급지고 배타적인 곳에 몇번 가보았더니 좀 시큰둥해졌다. 뭐, 거기서 거기겠지 생각부터 한동안 재미있게 보았던 미드 모던패밀리에서 가족들이 다니는 컨트리클럽이 아마 이쪽 근처일 것이라 tv로도 보곤 했었다. 골프장도 대중제와 회원제의 차이가 (돈값에 비례하여) 나겠지만 자본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으로 비행기도 있다. 언젠가부터 웬만하면 장거리 국제선은 상위 클래스를 타게되면서 무덤덤해진 면이 있는데 가끔 화장실을 가려다가 일반석과의 경계로 쳐진 커튼 너머로 이코노미석에 앉아있는 이들을 보면 괜히 뻘쭘하고 미안한 감정이 든 적도 있었다. 십몇년 전쯤에 나도 이코노미석에 앉아서, 그저 해외에 나간다는 들뜬 기분일 때는 비즈니스석이 딱히 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던 기억이고, 굳이 인간은 평등하다 내지는 역시 돈이 좋구나 식의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고 보지만 내가 그쪽으로 무딘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Summerly 같은 골프장은 수준에 맞게 저렴하니까 만족스럽고, 비싸고 좋은 골프장은 어쩌다가 기회가 되면 가보는 것인데 나는 한푼이라도 싼 곳에서 더 많이 치는 편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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