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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홀의 대규모 골프장이고 대회도 종종 개최하는 센추리21인데 나야 이번이 첫 방문이지만 다녀온 이들의 평은 일반적으로 별로다. 특히 퍼블릭인 마운틴 코스가 끼면 최악이라고들 했는데 저렴한 가격 하나만을 보고서 간다. 누가 설계했는가를 찾아보면 기본설계는 그린 컨설턴트, 조형설계는 Frank O'Dowd라고 나오는데 나는 아직도 조형 (shaping)이라는 작업이 골프코스 설계에 어떤 역할인지 잘 모른다. O'Dowd는 꽤 유명한 코스 shaper지만 나무를 심는다는 건지 뭐를 한건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회원제가 36홀인데 어떤 이유로 마운틴 9홀을 끼워서 도는 구성인지 속내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대치를 최하로 내려놓고 떠나는 평일의 오후다. 요즘답지 않게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강원도.
소박한 클럽하우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서려니 의외로 따뜻한 날씨다. 지난주에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감기몸살로 고생하는데 라운드 약속이 줄줄이 잡혀있어서 나을 틈이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약이려니 하고 약빨로 골프를 친다. 필드 코스는 비교적 전장이 짧아서 그야말로 드라이버/웨지 게임인데 단조롭지 않은 산악지형이라 기대보다는 즐겁다. 암벽을 넘겨서 좌로 돌아가는 5번 홀처럼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재미있는 디자인도 있다. 대체 어디로 치라는 말인가 싶은 8번도 근사했다. 매트가 깔린 티박스는 파 3 홀들에만 있는 것도 그나마 좋았고, 페어웨이 잔디상태가 별로였어도 그린은 관리가 잘되어있었다. 티박스의 매트는 내가 극혐하는, 그 골프장에는 다시 오고싶지 않은 요소인데 여기는 캐디의 재량인지 몰라도 옆에 잔디에서 치세요 한다. 사람 마음이 희안한 것이, 이러면 기분이 풀어지면서 매트 위에서 치게 된다.
후반인 마운틴 코스가 센추리21의 퍼블릭인데 시작부터 파 3 홀이다. 파 3로 시작하는 골프장은 처음 본다 싶었는데 이후로 6번까지는 까마득한 오르막이다. 물론 심리적인 부담만 떨쳐낸다면 어프로치 거리가 많이 남지 않으므로 파를 잡기에 무리가 없었다. 특히 6번은 엄청난 오르막이지만 티샷이 230미터만 나오면 원온이 된다. 이후의 홀들은 호쾌한 내리막이므로 주변 산세를 감상하며 마무리한다. 파 4인 8번에서 모처럼 잘맞은 티샷이 원온해서 (그러나 쓰리펏으로 파ㅠㅠ) 기분도 좋았다. 워낙 험난한 코스라서 그런지 해저드티가 엄청 후하다. 심지어는 남들 써드샷보다 그린에 가까운 지점에서 벌타먹고 쓰리온이 가능하니까 그냥 재미있게 치자면 또 이런 식도 괜찮다. 끝나면 다시 회원제 클럽하우스까지 거의 십분을 가야하는데 즐겁고 스코어도 좋은 라운드였다. 오는 이들도, 골프장의 분위기도 퍼블릭답지만 맘이 편해지는 골프장이라서 호불호가 있겠으나 내 기준에서는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