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 강남에서 (내지는 내가 사는 잠실에서) 가장 가까운 18홀 골프장이 어디(였을)까? 캐슬렉스도, 양주 cc도, 남서울 cc도 있겠지만 실은 지금 위례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는 지역에 성남 골프코스가 있었다. 미군부대 골프장이라 2019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지만 (바로 옆에 남성대 골프장이 있던 지역에는 이미 신도시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아무튼 미군과 관련이 없다면 아예 발길도 들일 수 없는 곳이었기에 여기에 골프장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주변에 미군 군의관으로 예편하신 분이 계셔서 몇번 가보긴 했었는데 골프장 자체로만 말하자면 그저 뻔한 미국의 municipal 코스에, 회원은 2, 30불만 내면 되었지만 게스트 그린피를 백몇십불이 넘게 받아서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아무튼 작년봄에 초록의 잔디가 올라올 무렵, 여기를 마지막으로 가보게 되었는데 리뷰를 좀 써볼 생각으로 설계를 누가 했을까 구글링을 해봤지만 나오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오렌지 엔지니어링의 포트폴리오와 Ault, Clark and Associates 홈페이지에서 Sung Nam military gc를 1989년에 만들었다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참고로 Brian Ault와 Thomas Clark의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도 유명산 cc (지금의 아난티 서울)를 만든 곳이다.
지금은 문을 닫은 골프장이라 이 글은 작년 봄에 갔었던 기록이 된다. 당시, 일요일 오후라 잠실의 집에서 십오분만에 골프장에 도착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미리 등록한 차량번호와 신분증 확인을 하므로 카풀이 정답이다. 소박한 클럽하우스에다가 그린피와 카트비를 먼저 프로샵에서 계산하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식이지만 샤워와 목욕탕이 딸린 미군 골프장은 아마 여기가 유일할 것 같다. 덧붙여서 카트를 타면서 캐디를 쓰는 것도, 그린을 두개씩 만들어놓은 것도, 우리야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경험일 것이다. 코스의 관리도 (한국 골프장의 기준에서는 그럭저럭 수준이지만) 미국의 군 골프코스에 기준하면 최상급이다. 주변의 아파트가 몇몇 홀에서는 눈에 거슬려도 남한산성의 아름다운 경치는 여기가 (이미 충분히 거대한) 서울에서도 가장 빠르게 팽창하는 지역임을 잊게해준다. 잔디가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쉬워도 즐거운 마음으로 첫 홀을 시작한 우리는 170 야드 파 3인 3번 홀에서부터 여느 숲속의 골프장 기분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전반의 베스트인 6번 홀부터는 (여기가 미국땅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저 아름다운 우리나라 골프장이었다. 6번 홀의 페어웨이에 멈춰서 그린을 바라보면 저 뒤로 숲이 울창해서 여름철에 왔더라면 장관이었을 것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더 아름다와지는데 내 입장에서 베스트 홀은 호수를 빙 둘러가며 반원형태의 페어웨이가 펼쳐지는 17번 홀이다. 재미있는 것은, 입구에서부터 (여기가 미군땅이니까) 신분증 다 맡기고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는데 막상 골프장 안에는 주변의 남한산성 등산로를 따라서 걷던 등산객들이 종종 페어웨이까지 내려와서 걷는다는 점이었다. 신도시가 생기고 등산객이 더 많아진 탓도 있을 것인데 옆에 미군부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제 미군 골프장이 있을 입지는 분명히 아니다. 그래도 부디 골프장이 문을 닫은 후 지역주민을 위한 공원으로 바뀌더라도 후반의 몇몇 홀들은 그대로 남겨놓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