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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이제 명실상부한 골프 8학군이다. 싸고 훌륭한 코스들이 널려있고, 지금도 여기저기에 계속 생겨나고 있다. 금강 센테리움 cc는 2008년에 개장한 27홀 코스인데 아일랜드 출신의 Robert Hunt라는 사람이 설계해서 그 취향 탓인지 각 코스의 이름도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이렇다 (이상한 일이지만 아일랜드 코스는 없다). 아름다운 양잔디 골프장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고, 처음 방문해서 스코틀랜드/웨일스의 18홀을 돌아본 것이 여러해전이었다. 영국에서 링크스 코스만 설계하시던 분이 이런 산골짜기에 골프장을 의뢰받았을 때 어떤 (황당한) 심정이었을까 조금 궁금해지기도 하고, 다 만들어놓고 이름을 저렇게 (꼭 영국식 코스인양) 붙인 것은 과연 설계자의 의도였을까 궁금증이 많이 생긴다. 금요일 오전의 일과를 마치고 서울에서 내려가려면 아무리 고속도로가 빵빵 뚫려있어도 한시간 반은 넘게 걸리는데 안성이나 이천의 골프장에 가는 시간이나 거의 비슷해서 충청북도라는 심리적 부담감만 벗어난다면 (그린피도 경기도에 비해 확~ 떨어지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티박스에서 페어웨이를 올려다보면 (영국의 골프장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전형적인 산악지형이지만 경치가 아주 좋다. 물론 물결치듯 구겨놓은 페어웨이와 여기저기 보이는 해저드가 쉽지 않은 하루를 암시하지만 어려울 수록 좋은 골프장이라는 식의 설계 컨셉이 한동안 우리나라에 유행했었다. 언제나 도전해볼까? vs. 즐겁게 쳐볼까? 이런 마음가짐이 스코어를 결정짓는 것 같지만 아무튼 어려우면 몸이 힘들다. 전체적으로 길지는 않은데 그린마저 커다랗고 언듈레이션이 심해서 멘붕을 겪었더랬다.
그리고 때는 바야흐로 2020년의 봄이 되었다. 김** 선생이 박사학위를 받은 기념으로 충주까지 내려가 일박이일 골프를 치기로 했는데 첫날 잡은 곳이 여기 금강 센테리움이다 (다음날은 동촌 cc). 이번에도 스코틀랜드 코스로 시작하는데 한동안 잘 맞던 드라이버가 요즘 말썽을 부리길래 호기롭게 새로 장만한 젝시오 11을 집어가지고 나왔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오랜만에 존경하는 윗분들과 아끼는 후배와의 라운드라 적어도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티샷은 잘 날아간다. 사실 내딴에는 죽어라 힘을 쓴 샷인데 다들 이제는 "힘빼고 부드럽게" 친다고 칭찬해주니 어떻게 해서 잘 맞아준 것인지 나도 모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중하게 치니까 그런 모양인데 롹실히 공이 좀 맞아주는 날의 골프장은 다 좋아보인다. 여기도 충북지역의 산세를 배경으로 하니까 멋지지 않을 수가 없는 골프장이다. 아니,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름답고 어려워서 웬만한 회원제들보다 더 낫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그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니 무딘 감성의 소유자라지만 행복하다. 그런데 공이 그럭저럭 맞아주지만 보기플레이어는 어쩔 수가 없는가 그런 아쉬움이 생긴다. 티샷이 똑바로 잘 가도 그린까지는 롱아이언이나 심지어는 하이브리드를 꺼내들어야만 하니 투온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보통 그린의 주변에는 벙커나 해저드가 방어벽을 치고 있고, 대개의 우리나라 그린은 약간 솟아있는 형태라 거리와 정확성이 다 좋아야하는데 5번 아이언을 정확하게 칠 실력이라면 350미터 파 4 홀에서 세컨샷으로 5번을 칠 일은 없을 것이다. 레슨을 다시 받아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하는 실력이 어디냐, 괜히 다시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장비를 바꿔볼 생각도 늘 하지만 이미 여러번의 바꿈질 끝에 내 골프백에는 2010년에 미국에서 처음 구입한 캘러웨이 세트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오래 쳐서 손에 익은 골프채가 제일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