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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동남아로 동계골프를 떠나는 와중에 나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왔다. 호텔까지 이동해서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꿀잠을 잤고, 다음날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 골프나 칠까? 생각에 Teeoff 앱을 켜고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코스가 여기라서 무작정 방문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면서 보니까 잔디반 황무지반으로 보여서 혹시 여기는 망했거나 RV 파크에 딸린 짧은 코스인가 (미국의 RV 캠핑장에는 파쓰리 골프장이 딸린 경우가 종종 있음) 걱정스러워서 차를 세워놓고는 구글링을 해보았다. 그래도 여기는 Tom Sanderson 설계로 1965년에 개장한 18홀 골프장이었고, 파 70에 6천야드가 조금 넘는, 살짝 짧다고는 해도 2016년에 Dave Fleming이 리노베이션까지 했다고 나온다. 프로샵에 들어가니 한국인 프로가 "한국분이시죠?"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어쩌면 그분이 골프장의 주인이 아닐까 생각도 나중에 했다. 아무튼 (매우) 저렴한 그린피를 치르고는 1번 홀로 간다.

처음 보이는 것은, 티박스에서 저멀리 페어웨이까지의 공간이 거의 황무지 수준으로 밀어놓았는데 서리가 내린 탓에 마치 눈밭처럼 느껴졌다. 분명 시작하는 라운드가 기대되는 풍경은 아니었다. 카트에는 Meadow Lake라고 적혀있는데 아마 이전에는 이 이름이었던 모양인데 몇년이 지났어도 바꿔놓지를 않은 것이다. 코스가 "boulder" (바위)와 "oaks" (참나무)로 이루어졌지 "meadow" (초원)과 "lake"는 없으므로 현재의 이름이 더 적절하기는 하다고 생각했다. 페어웨이와 그린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사판 같은 것은 아마도 관리의 부족이거나 가뭄 탓이려니 했다. 코스는 짧지만 어려웠다. 기껏 240야드밖에 안되는 파 4 홀들이 있었으나 블라인드샷을 한다거나 심한 도그렉 등으로 어이없게 타수를 잃었으니 재미보다는 이거 뭔가 골프장이 이상하게 생겼네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저렴한 골프장은 보통 샷을 연습할 목적으로도 많이 찾을텐데 티박스에서 페어웨이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디자인이라면 초보자 후렌들리한 코스는 분명 아니다. 압권인 홀이 17번인데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커다란 바위가 튀어나와 있었고, 그 주변으로 벙커가 조성되어 그쪽으로 공이 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생겼다. 그 바위가 코스의 상징적인 부분이라 나름 멋져보일 의도로 그냥 놔두었을 것이지만 코스가 워낙 이상하다보니 저거 파낼 돈인 없었던 것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주로 골프를 치는 백돌이지만 라운드 횟수로만 보자면 미국에서 더 많이 쳤다. 이를 아는 주변사람들은 내게 미국 골프장이 한국에 비해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지금껏 다녀본 경험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골프가 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골프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전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많이 특이한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여전히 돈이 들어가는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주말의 경우, 웬만한 직장인의 한달치 용돈이 들어가는데 자기 돈으로 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명랑골프니 어쩌니 해도 공 서너개를 잃어버려가며 백타를 넘겨버리자면 좋은 기분으로 귀가하기가 쉽지 않다. 비싼 돈을 치렀는데 홀마다 밀리거나 직원이나 캐디의 응대에 불만족스럽기라도 하면 최악이고, 반대로 으리으리 주눅들게 만드는 분위기도 별로다.

한국에서만 운동하는 이들은 골프라는 취미가 얼마나 대중적이고 즐거운가를 좀처럼 알기 어려울 것이다. 어떠다가 동남아에서 황제골프를 쳐보긴 했더라도 결국 따져보면 많이 싸지도 않고, 캐디나 직원들을 하대하며 그저 왕같은 기분을 잠시 느꼈을 뿐이다. 서양에서의 골프는 크게 두가지인데 좀 있는 사람들끼리 자기들만의 리그로 즐기는 컨트리클럽이 일부 있고, 상당수는 영화를 보러간다거나 볼링 한게임 수준의 대중 스포츠다. 일이 일찍 끝난 날에 집으로 가다가 문득 생각나서 한나절을 보내는 수단이거나 친구들이랑 우리 뭐할까? 피씨방에나 갈래? 정도로 가볍게 방문하는 곳이다. 한편, 나처럼 그저 공치는 것이 좋아서 혹은 일상에서 겪은 스트레스를 잊어보겠다고 혼자서 묵묵히 몇시간을 걷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다보면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골프장이 나오고, "Public Welcome" 이런 푯말을 보고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나름 역사도 있고, 설계자도 있을텐데 솔직히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코스는 의외로 근사하고, 잔디가 군데군데 죽어있긴 하지만 그린만큼은 잘 관리되고 있다. 라운드 동안에 앞이나 뒤로 사람을 만나는 일도 별로 없지만 중간에 페어웨이를 관리하는 인부를 마주쳐서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이런 코스들은 여행이나 출장으로 가서는 만나기 힘들고, 현지인들이나 가는 곳인데 이런 식이 내게는 진짜 골프다.

 

 

저 앞의 바위를 넘기는 티샷을 해야한다

 

 

 

폐어웨이 한가운데 놓은 바위 (bo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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