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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미국에 가면 둘째날은 어찌어찌 버텨지는데 세번째 날이 시차로 가장 힘든 날이 된다. 전에는 스틸녹스 등의 수면제도 처방받아 먹어보고, 멜라토닌도 사먹고 했는데 요즘은 도착한 첫날 CVS에 가서 안티히스타민 제제의 sleep aid 약을 사서 먹는다. 잠도 잘 자지만 아침에 목과 코도 뚫리는 느낌이라 이게 좋다. 아침에 호텔 조식도 먹지 못하고서 찾은 Castle Creek CC 역시 싼맛에 잡은 곳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비싸면 무조건 좋은데 싸다고 다 엉터리는 아님을 경험상 터득한 바 있는데 여기도 인당 25불로 싸게 잡았지만 정가 그린피는 평일에도 $60이 넘는, 세미-프라이빗 골프장이다 (이름도 "컨트리" 클럽이다). 1948년에 Jack Daray 설계로 개장한 이 골프장은 이후에 Perry Dye가 리노베이션을 했다는데 불황과 가뭄으로 최근에는 관리상태가 별로라는 평이다. 아무튼 Escondido라는 동네에는 중저가 골프장들이 몰려있는 동네라 나중에 맘잡고 몇일 머물면 좋겠다 싶다.

뭣같은 구글맵 덕택에 엉뚱한 곳을 가서 헤매느라 30분 정도 늦었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다며 우리가 잡은 가격 그대로 플레이하게 해주는 친절한 골프장이다. 시작하는 1번 홀은 주택가를 따라서 쭈욱 전진하는 평이한 파 4 홀이었지만 이어지는 코스는 협곡을 따라 펼쳐져서 왼쪽은 OB, 오른쪽에는 해저드인 식이다. 러프라고 부를 부분이 별로 없어서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거진 죽었다고 보면 된다. 가장 멋진 홀들은 6번과 9번이었는데 그린 옆으로 근사한 폭포가 있는 파 5 홀에서의 버디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6번에서였는데, 화이트티에서 560야드를 세번의 굿샷으로 도달해서 만든 버디니까 좀 우쭐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 자타공인 Castle Creek의 시그너처 홀이라는 14번도 근사했다. 블루티와 화이트티가 백야드가 넘게 차이나는 파 4라서 화이트티 플레이어인 우리들은 어렵지않게 페어웨이 끄트머리까지 갔지만 그린 왼쪽의 호수를 피해서 온그린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지만 재미있는 디자인이라 우리나라 산악지형에도 이런 식의 코스를 만들면 좋겠다 싶었는데 나야 재미있었지만 같이 간 동반자들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 날을 연속해서 골프를 치면 하루쯤은 완전히 망가지는 날이 생기기 마련이다. 스윙이 어색하고, 공을 맞추기도 힘들어진다. 나는 그래도 이제 이골이 나서 대충 숏게임 설겆이로 치는데 억지로 치는 모양인 동반자들을 보면 좀 미안하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있어야 더 매달리게 되고, 레슨도 다시 받고 그럴 거라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가성비로는 흠잡을 구석이 없을 골프장이었다. 사실, 25불로 한나절을 즐길 수 있다면 이만한 운동도 없다. 미네소타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Dr Dan Sachau가 2010년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골퍼가 들이는 돈 중에 가장 가치있는 것은 프로에게 레슨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그 논문에서는 약 1,700명의 골퍼를 대상으로 Stroke Index라는 수치를 측정했는데 예를 들어 레슨 여섯 번을 받으면 평균 3.1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수치는 다음과 같다: 레슨 6회 (3.1), 클럽 피팅 (3.0), 신제품 아이언 구입 (1.9), 신제품 드라이버 구입 (1.8), 연습장 3개월 등록 (1.7), 매주 한번씩 더 골프장에 나가는 것 (1.6), 거리측정기 구입 (1.4), 신제품 골프공 (1.3), 신제품 퍼터 구입 (1.2), 그립 교체 (1.2), 새 글러브 구입 (0.6), 골프 잡지 정기구독 (0.5), 새 골프화 구입 (0.4) 등이다. 투어 프로의 경우에는 경기를 앞두고 $1,000이 있으면 평균 $525를 레슨에 쓰고, $300을 연습 라운딩에, 그리고 $175를 클럽 피팅에 소비한다고 한다.

일반 골퍼는, 보통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보다는 가장 손쉬운 일을 먼저 한다. 스윙을 교정하거나 클럽피터에게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기보다는 쇼핑이 훨씬 덜 부담스럽고 쉽다. "self-handicapping"이라 불리는 다른 이유도 있다. 성적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가장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나름의 핑게를 마련해두는 행위, 말하자면 다음날 시험을 앞둔 학생이 밤새 술을 마시는 식이다. 시험을 망치면 그는 자신의 능력부족을 탓하기보다는 전날 마신 술과 친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이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처럼 내 문제와 그 해결책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매일같이 골프장에 나가 골프채를 휘두르며 막연히 이러다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는 것은 시험공부 안하고 시험에 임하는 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GolfTEC 소식지에서 읽은 글에서도 아마추어 골퍼의 70%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클럽을 사용하지만 70%의 골퍼는 그 클럽이 자기에게 맞는다고 믿는다고. 그리고 나머지 30%도 클럽이 몸에 맞지 않더라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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