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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골프의 역사는 지금의 효창공원 자리에 있었던 서울골프구락부이며, 골프선수의 역사는 캐디 출신으로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연덕춘 씨가 시작이라고 한다 (거의 스물살 캐디출신 아마추어가 US 오픈에서 우승했다는 Francis Ouimet에 버금가는 스토리). 그가 사고로 나중에 골프를 접은 이후에는 골프장 설계에 전념했다고 하는데 리베라 서코스, 여주 cc 등의 오래된 코스들과 함께 여기 양주 cc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대단할 것도 없는 골프장이지만 연륜이 배어있는 곳이다. 원래는 춘천 가는 길의 산자락에 만들었겠지만 경춘고속도로가 뚫리고 서울이 계속 확장해가는 이 시점에서는 강남에서 매우 가까운, 그래서 평일에도 붐비는 골프장이 되었다. 위치 덕택에 몇번 가보았지만 어찌나 팀을 많이 받는지 매 홀마다 주욱 늘어선 카트를 보며 담배만 엄청 피워댔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가까우니까 종종 기회가 생겨서 가고 또 간다. 잘 맞는 날이 있었고, 또 죽쑤는 날이 있었다. 핑게일 수 있지만 나는 예전부터 뭔가를 하려면 주변 상황부터 충족시켜야 했던 사람이다. 논문을 쓰려면 책상에 참고문헌부터 필요한 데이타까지 몇시간이고 걸려서 준비를 마친 후에야 (커피와 담배도 물론 준비해야) 비로소 일을 시작해서 주르륵 써내려갔던 것이다. 골프도 마찬가지여서 날씨에서부터 코스의 상태, 동반자, 무엇보다도 내 몸의 컨디션이 준비되어야 좋은 스코어가 나온다. 첫 홀에서 잘치면 이후는 비교적 쉽게 풀려나간다. 뭐, 안맞는 공에 대한 나의 핑게일 뿐이겠다.
이 골프장의 주인은 근영농산이라는 회사라고 한다. 비료회사인지 농장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상상하기로는 근방의 산에서 농사짓고 소키우던 부농이 이 땅에다가 골프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개장하던 당시에는 골프장 허가받기가 하늘의 별따기같던 시절이라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북한강에 맞닿은 산자락이라 정경유착이 아니라면 골프장이 아니라 집도 한 채 짓기 어려웠을 지역이다. 아무튼 당시에 경치가 어땠을라나 모르지만 지금은 북한강과 경춘고속도로가 저멀리 보이는, 근사한 위치가 되었다. 서울에서 가깝고, 경치도 좋으니 폐쇄적인 회원제였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아무튼 지금은 새벽부터 밤까지 북적거리는 그런 골프장이다. 가격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아주 싼 것은 아니지만 용인권의 골프장에 비해 만원이라도 더 쌌다) 어디 가까운 곳에서 공이나 한번 칩시다 약속이라도 잡을라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잠실의 집에서 새벽에 나서면 화도 ic를 거쳐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동코스나 서코스 어디부터 시작하더라도 1번 홀은 저멀리 강을 바라보며 티샷을 한다. 나는 교통사고로 한동안 연습장에 발길을 끊었음에도 다행히 샷감이 남아있어서 티샷이 잘 맞는다. 오랜 기간 내 약점이었던 우드류는 스스로 놀랄만큼 똑바로 멀리 가는데 오히려 그린 주변에서 퍼덕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양주 cc는 폐어웨이가 비교적 관대한 편이고, 어프로치도 까다롭지 않은데 연덕춘 씨의 코스답지만 의외로 스코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코스의 관리상태도 수많은 내장객에 비해 좋은 편이었고, 뽑기도 잘해서 돈도 벌었다. ㅋ 나는 내기를 거의 하지 않지만 누가 제안해오면 빼지는 않는 편인데 돈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도저히 안되겠는 상대에게는 아예 도전을 안하기도 하지만 숏게임과 퍼팅으로 먹고살았던 사람이라 롱게임에만 조금 더 집중하면 보기 이상은 잘 나오지 않는다. 멀리건과 오케이가 남발하는 명랑골프에서는 오비도 종종 내지만 그런 식의 풀어진 플레이를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