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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곤지암 3인방 중에서는 이스트밸리만 여전히 그 신비함을 지키는 모양새고, 남촌이나 렉스필드는 최근에 가끔 방문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중에서도 렉스필드는 최근에 입회금을 반환하고 퍼블릭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렉스필드 홈페이지에는 Tom Peck이 설계했다고 당당하게 적혀있으나 함께 참여한 성치환 씨의 노력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여기는 레이크/밸리/마운틴의 27홀 코스이고, 자칭 렉스필드 "8경"이라고 몇몇 홀들을 지정해놓았기에 27홀을 다 돌아보면 좋겠으나 아무튼 모처럼만의 기회라서 (비싼 가격이지만) 즐겁게 방문하여 마운틴과 밸리코스를 돈다.
이렇게 배타적인 회원제 골프장에 와보면 두가지 모순적인 생각이 든다. 바글바글한 클럽하우스에서 여전히 돈많은 사람들이 많구나 하면서 나같은 서민도 그속에서 부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에 우쭐한 것과, 운동하는 시설이 뭐 이렇게까지 거창하고 비쌀 필요가 있을까 식이다. 나같은 골프코스 사냥꾼에게는 처음 가보는 골프장은 다 오케이지만 한두번 기회가 닿으면 오는 것이지 굳이 애를 써서 또 와볼 이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좋은 코스에서는 늘 즐겁다. 마운틴 코스의 첫 홀에서 바라보면 호수 너머로 레이크 1번 홀도 함께 보이는데 꽤나 절경이라 저쪽 코스를 못가보는 것이 못내 아쉽다. 풀부킹이라 빡빡하게 앞뒤의 팀이 들어섰어도 8경 중에서 네번째인 마운틴 3번 홀의 페어웨이에 서면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멋진 광경을 마주할 수 있다. 밸리코스 1번 홀은 비교적 짧은 파 5인데 그린의 절반쯤이 소나무숲과 바위로 가로막혀있어서 잘 쳐도 낭패를 보게도 되고, 반대로 행운의 샷이 나오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까 내가 렉스필드에 처음이 아니었구나 깨닫고 구글의 일정표를 보니까 2012년에 한번 와본 모양이다. 코스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초보시절이지만 이 홀의 인상은 깊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오직 뒤로는 하늘만 보이는 그린으로 공략하는 밸리 8번과 라운드의 대미로 손색이 없는 9번 홀은 꽤나 드라마틱해서 과연 렉스필드가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코스로구나 싶다.
위에도 적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하려면 시간과 돈, 동반자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복받은 인생이다. 오늘처럼 고급 컨트리클럽에 쉽게 부킹해서 가게되면 20년도 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당시에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만으로는 신혼의 가정을 꾸려나가기가 빡빡해서 앞으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는 걸까 고민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주말마다 놀러다니고, 사흘이 멀다하고 외식을 즐기며, 집은 없어도 수천만원짜리 대형차를 몰아야 한다는 세태를 한탄하는 글이 신문에 실리곤 했던 것이다. 골프장이 운동장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치를 과시하는 장소였을 그 시절에 비해 지금은 좀 나아진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