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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뉴지 (Venue g)라는 생소한 이름은 서울에 있는 그랜드호텔에서 만든 (그런데 그랜드호텔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름) 27홀 골프장이라고 한다. 여기를 가기로 하고서는 인터넷을 뒤적였더니 (전형적인 가평의 퍼블릭답게) 산자락에 층층이 페어웨이를 쌓아놓은 식이라고 하며, 설계자는 누구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가평의 산세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고, 금요일 오후에 비교적 저렴한 그린피라 새로 생긴 골프장을 정복한다는 심정으로 떠났다. 가평의 골프장들이 서울에서 좀 멀긴 하지만 여기는 특히 청평과 가평 읍내를 지나가기 때문에 확실히 오래 걸렸다. 27홀의 코스는 지/휴/힐 코스라고 불리는데 휴/힐이 먼저 개장했다고 하며, 좀 나중에 손님을 받기 시작한 지 (G) 코스는 원래 계획으로는 회원전용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날 지/휴의 순서로 돈다. 주변에 코스가 좋은 골프장들이 많고, 코스는 별로라도 서비스가 돋보이는 곳들도 있어서 여기가 얼마나 잘될까 걱정스런 골프장이지만 생각밖으로 붐비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오래가던 더위가 언제 그랬냐며 갑자기 쌀쌀해진 날이라 고생이 예상되지만 살짝 흐린 하늘에 공기가 맑아서 사진빨은 좋을 것이다. 지코스 1번에 서서 앞의 팀을 보자니 페어웨이 잔디가 듬성듬성 죽어보이는 곳이 많다. 개장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저렇다니 살짝 아쉬웠다. 반면에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우리나라 골프장의 최근 트렌드?) 그린은 보기보다 빨랐고, 관리상태도 좋았다. 미국의 퍼블릭에 가보면 늘 느끼는 거지만 페어웨이가 별로라도 그린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그린피를 내는 거지 페어웨이피를 내는 것은 아니지 않냐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자고로 골프는 샷과 펏으로 이루어진 운동이라고들 했지만 필드보다 연습장 위주로 연습했을 우리나라 골퍼들은 퍼팅에 신경을 덜 쓴다. 오케이도 너무 후하다.
코스는 길지 않으면서 좁고, 대신에 보여지는 경치와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보인다. 지 코스의 6번부터 9번까지의 경치가 이 골프장의 설계철학을 말해준다 싶은데 물을 넘어가거나 끼고 도는 식이라 어렵지만 일단 아름답다. 지 6번 티박스에서의 경치는 여느 고급 골프장에 비해서도 대단했다. 소위 "Grip and rip it" 식으로 힘주어 지르는 이에게는 악몽같을 코스지만 또박또박 간다면 나쁘지 않았다. 흠을 잡자면 아직 뭔가 미완성인 듯한 잔디상태와 조경인데 이런 부분은 가격이 싸다고 용서받을 수 없다. 게다가 시간이 더 흐르더라도 기본적으로 명문 소리를 들을 수준은 아닌데 그저 푸른 잔디에서 공치는 게 좋은 우리는 싹싹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캐디 덕택에 즐거운 라운드였다.
그리고 후반의 휴 코스는 상태가 조금 나았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도 공이 잘 맞아주어서 즐거웠다. 몇주간 슬럼프로 골프를 접나? 생각까지도 했었는데 금방 회복했으니 다행이면서 나란 사람도 참 간사하다 싶었다. 공이 안맞아서 고생하는 시기가 지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이 골프다. 이날도 롱홀인 휴 7번과 9번에서 모두 버디찬스를 (버디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찬스~) 맞았으니 기분좋게 라운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동안 내 문제가 뭐였느냐하면, 언제부턴가 손목을 터는 스윙을 했던 것이다. 우연히 잘 맞는다 싶어서 그런 스윙을 하게 되었겠지만 손목장난에 익숙해지다보니 공을 컨택하는 법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아무튼 즐거운 날이었는데 베뉴지가 훌륭한 골프장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이 시국에라도 부킹이 된다는 것이 뿌듯했다.
저녁식사후 귀가하는 차안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아마도 11월부터는 태국 골프여행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행상품도 벌써 여럿 나와있었다. 가격이야 국내에서보다 저렴할테고, 추운 겨울에 동남아에서 반팔과 반바지로 운동하는 것은 엄청나게 솔깃한 얘기다. 그런데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카트비, 캐디피 별도라는 것에는 역시나 황당하다. 현지인들도 이렇게 그린피와 별도로 돈을 더 낸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인데 캐디에게 주는 (150 바트 정도?) 팁까지 생각하면 매 라운드마다 3만 5천원에서 4만원 정도를 더 지불하는 것이고,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거는 거의 사기에 가깝다. 4만원이면 18홀 그린피와 카트까지 포함해서 칠 수 있는 지역이 전세계에 널렸으니 아무튼 빨리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