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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킹스데일

hm 2021. 10. 9. 07:46

미쳤다 싶을만큼 올라버린 올해 그린피에 그나마 부킹마저도 어려워진 탓에 또다시 멀리까지 가보는 평일 오후의 라운드. 이번에도 충주 근처까지 가는데 여기 주덕면이라는 동네는 (가서 보니까 이제는 읍이 되었다) 옛날에 마장동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이제 충주가 가까와졌구나 졸린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펴던 위치다. 주변의 달래강과 탄금대도 익숙한 곳이지만 그 시절에 골프장 따위는 있지도 않았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저게 뭐지?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송호 씨의 설계로 2012년에 개장한 18홀 코스인데 각 9홀 코스의 이름은 (정직하게도) 레이크/힐 코스다. 예전에 갔었던 당시에 로비에서 잡히는 와이파이 중에 "songho"가 있었던 것을 보면 그의 사무실이 여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본 사람들 말로 절경에 쉽지 않은 디자인이라고들 했는데 종종 가본 센테리움이나 동촌도 그랬지만 저렴하고 좋은 골프장들이 널려있으니 충주는 (골프치는 이들에게) 정말 좋은 동네다.

우리가 시작한 레이크 1번은 계곡을 내려다보는 파 4 홀인데 시각적으로 부담이 덜해서 장거리 운전을 마친 우리로서는 좋은 스타트였다. 하지만 호수를 건너가는 레이크 2번부터는 만만찮은 코스라 깨닫게 되는데 공이 페어웨이에 잘 가더라도 그린사이드에도 워터해저드가 있어서 어프로치를 잘해야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티샷으로 물을 건너가야해서 아름답지만 부담이 생기고, 그린의 반쯤은 벙커가 가리고 있다. 매홀 "보기"가 작년까지의 내 목표였는데 요즘 어쩌다가 그분이 오시는 날을 몇번 겪다보니 욕심내는 경향이 있다. 150미터가 넘는 어프로치도 이제는 그냥 핀을 향해 쏘는데 두번에 한번은 여지없이 벙커로 들어가게 되고, 스코어는 죽을 쑨다. 그래도 몇미터 짧거나 빗나가서 리커버리를 시도하는 재미가 요새는 쏠쏠하니 무조건 레이업이다라고 했던 시절보다 스코어를 망치기도 하지만 이런 게 아마추어 골퍼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실력보다 이론에 밝은 골퍼라서 우드나 하이브리드를 잡아야하는 어프로치에서는 아이언에 웨지로 잘라가곤 했는데 그렇다고 프로들처럼 60미터 웨지샷이 핀에 붙어주는 것도 아니니까 때로는 닥치고 공격이 맞을 수도 있다.

전반에서는 비교적 짧은 파 4인 레이크 7번이 압권이었다. 티박스에서 보면 온통 벙커밖에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여간해서 벙커까지 티샷이 가지 않으니 일종의 착시다. 세컨샷도 벙커에 위축되지만 않으면 어렵지 않을텐데 그게 참 어렵다. 송호 씨가 설계한 코스들은 대개 이렇게 그린의 한쪽으로 무시무시한 벙커나 해저드를 배치해서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할 곳을 알려주지만 도전이냐 안전이냐는 전적으로 골퍼의 몫이다. 한편, 아름답기로는 높은 티박스에서 저멀리 능선이 바라보이는 8번이 시그너처 홀이었다.

한편, 후반인 힐 코스는 시작부터 부담스러운 협곡을 넘어가야하므로 레이크부터 돈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힐 2번은 비교적 짧고 아름다운 내리막 파 5여서 (나로서는)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투온에 도전했다. 우드샷이 거의 그린까지 잘 갔는데 왼쪽의 벙커에 빠지면서 망한 홀이었다. 힐 코스에서도 뒷쪽의 송전탑들 탓에 Crossings at Carlsbad가 연상되는 5번에 (여기는 원온하겠다고 기다리는 이들로 밀린다) 이어 7번이 압권이었는데 티박스에서 보기에는 페어웨이 우측으로 보내야 그린이 보일 것 같았는데 막상 그쪽에서는 그린사이드 벙커를 넘어 포대그린으로 어프로치하게 된다. 언제든 다시 이 홀에 온다면 다른 방법으로 공략해보리라 (예를 들어 IP 좌측으로 티샷을 보내고, 거기서 계곡을 넘어가는 어프로치) 기억에 남는 홀이다. 그리고 가만 보니까 송호 씨의 벙커 설계는 맥킨지 박사의 Pasatiempo를 떠올리게 한다. 10월초의 우리나라 산세는 전세계 어디보다도 아름다왔다. 그리고 올해는 더위가 오래간다 싶어서 10월인데도 반팔을 입었더니 후반에 살짝 비가 오면서 추워졌다. 아무튼 오고가는 길의 차막힘으로 고생했지만 좋은 코스에서의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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