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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퍼블릭 골프장으로 주인은 문경시고, 설계자는 랜드엔지니어링의 임형채 씨다. 이쪽 동네로 말하자면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대신이긴 했으나) 첫 직장으로 3년을 보낸 곳이며,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차렸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였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20대 남자에게는 따분하고 뭐 하나 유명한 명소도 없는 깡촌이었다. 당시 탄광들이 속속 문을 닫던 시절이라 민심이 흉흉했으나 내 주변에는 다들 착하고 좋은 분들로 가득했었고, 아무튼 그 3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여유로왔던 시절일 것이다. 돈도 시원찮게 벌던 그 시절에도 주변 동료들은 예천 비행장의 골프장에 다녔는데 하도 권하는 바람에 나도 레슨을 3개월치 끊었다가 내 팔자에 이런 운동할 일은 없을 것 같아 하루 나가고는 말아버렸었다. 뒤늦은 나이에 골프에 재미붙여서 고생하고 있으니 그 시절이 새삼 후회스럽다. 누가 좀 나를 그때 억지로라도 골프에 입문시켜줬더라면, 뭐 그런 식의 억지인데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 요즘에는 후배들에게 자꾸 골프배우라고 부담주는 꼰대짓을 하고 있다.
사실 문경 gc가 위치한 마성면은 종종 놀러갔던 동네였지만 우리가 아는 문경새재와는 좀 방향이 다른 곳으로 내 기억에는 그저 산골짜기로만 남아있는 지역이다. 봄에는 두릅따러,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찾아 산을 올랐던 생각이 난다. 이런 곳이니 지역경제를 살려보고자 애쓰는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골프장이라도 만들어 사람들을 오게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인데 자연의 보존이냐 훼손이냐 그런 심각함은 잘 모르겠고 덕분에 나도 추억에 잠시 젖을 수 있었다. 아름다왔지만 거칠고 못살던 동네가 나름 깔끔하게 (그러나 좀 인공적으로) 단장된 것을 보니 나 개인적으로는 대견하고 뿌듯하고 그렇다. 실은 어제 제주도에서 학회 좌장을 하고, 내일은 경주에 가야하는 일정이라 대구나 청주공항을 통하려고 하니 문경새재리조트에서 일박하고, 골프치고 가면 딱인 동선이다. 맘같아서는 문경, 점촌 곳곳을 돌며 과거를 추억하고 싶지만 우선 이번에는 골프만 친다.
문경 gc는 문희/경서 코스로 이름붙은 (이 두 이름이 "聞慶"의 어원인지, 나중에 갖다붙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음) 18홀 골프장이다. 일박하고 금요일 오전의 라운드까지 해서 인당 8만 5천원이면 (카트와 캐디피가 붙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저다 싶은 가격인데 워낙 산세가 아름다운 고장이라 골프장도 근사해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아마 주흘산일 것인데 봄이면 두릅을, 가을이면 송이를 딴다고 동네 아저씨들을 따라 오르내렸던 곳. 험한 지형이라 페어웨이가 좁아보이고, 타겟골프인 것은 여느 경춘권 골프장과도 흡사했다. 퍼블릭이어도 파 3 티박스에 매트가 없는 것은 좋았는데 법면에 박혀버린 공은 "무벌드롭입니다 얼른 빼놓고 치세요~" 하는 식의 운영은 저렴한 가격에 명랑골프니까 이해하기로 한다. 골프코스의 관점에서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지만 추억을 더듬는 의미로 내게는 즐겁기만 한 골프장인데 동반자들도 어렵고 아름답다고 만족한 눈치. 이 골프장의 시그너처 홀이라면 문희 2번과 6번이지 싶은데 2번 홀은 그린 너머로 보이는 산세가 그럴싸하고, 문희 6번은 계곡을 넘어 잘 보이지도 않는 페어웨이를 향해 전진하지만 가장 높은 위치라 주변의 풍광이 다 내려다보여서 아주 근사하다. 언제부턴가 티샷이 안정되면서 보기플레이는 기본으로 하는데 문경 gc처럼 그린 주변이 어려우면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다시 가보고싶었던 문경으로 골프를 빌미로라도 방문하게 되어 가슴벅찬 날이었다. 착한 가격은 정말로 전국 최강이었고, 서울 인근에서는 느끼기 힘든 직원들의 친절에도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