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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중문단지에서 묵을 때마다 생각나던 중문 골프클럽은 (예전에는 명칭이 중문비치 컨트리클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번째 방문이 쌩초보 시절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런 날에도 골프를 치나?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엄청 고생만 했었는데 특히 그린 앞에 해저드가 있던 파 3 홀에서 (원치 않는) 동반자들의 호의로 티샷을 서너번이나 반복한 끝에 공을 다 잃어버리고는 고개를 떨구며 그린으로 다가갔더니 온그린한 세명이 서로 버디를 하네 마네 즐거워해서 더 비참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장정원 씨의 설계로 개장해서 초기에는 미국 PGA 투어를 유치하기도 했다는 이 코스는 한국관광공사 소유라서 아직도 퍼블릭이다. 따라서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서 부킹이 거의 로또 수준인데 혹서기라서 그런가 쉽게 7시 중반대의 티타임을 잡았다.
중문단지 호텔에서 잔다면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것이, 이 골프장이 단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스 한가운데에 그랜드조선호텔, 예전의 켄싱턴호텔이 있다). 뒤로는 한라산이,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위치한 입지다. 경치도 기후도 좋은 곳이라서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한겨울에도 제주도에서 가장 골프치기 좋은 곳이라고들 한다. 해안/한라 코스라고 9홀씩 이름이 붙어있는데 한라로 시작해 해안으로 끝나는 순서가 제대로라고 한다. 내 생각에도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홀들이 해안 5번과 6번이라서 이 순서가 좋을 것도 같았으나 이날 우리는 해안 코스를 먼저 쳤다. 첫 홀부터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며 티샷을 하고, 조금 있으면 푸른 바다 저멀리로 마라도가 보인다. 해안 코스에서 펭귄 모형들이 서있는 그린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 리조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국룰이라 우리도 그렇게 했다. 공도 괜찮게 맞아주어서 그옛날 영혼을 털려가며 고생했던 중문 cc에 제대로 복수를 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중문의 시그너처 홀은 해안 7번인데 우측에 높은 절벽과 푸른 바다가 경이적인 경치를 보여주는 이 홀에 오면 다들 바다를 향해 공 하나씩을 날려버리곤 했었다지만 지금은 금지하고 있단다.
후반에 플레이한 한라 코스는 전형적인 산악 골프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골프장은 처음의 설계가 어땠건간에 세월이 만들어낸 기품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페어웨이 양측의 나무들 사이를 지나노라면 무더위도 견딜만해진다. 좋기는 정말 좋구나 혼잣말을 하며 걸어보는데 제주도니까 뭔가 야자수도 많고 그래야할 것 같지만 소나무만 울창해서 내가 여기 와봤던 것이 맞나 슬슬 자신이 없어졌다. 이번에 우리는 연신 땀을 닦아가며 쳤지만 지금까지 몇차례의 방문은 대개 겨울철이어서 추위와 바람으로 고생했었다. 한라 5번에는 소위 "윈드해저드" 룰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화이트티에서 140미터쯤 되는 파 3에서 티샷이 죽으면 멀리건 하나를 다시 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한다. 위치가 워낙 좋으니까 앞으로도 좋든 싫든간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길 중문 골프클럽인데 몇년전부터 매각 얘기가 있으니 누가 주인이 되더라도 계속 이 가격과 관리상태가 이어지면 좋겠다. 인근에 유명하다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맛있게 먹고나니 너무 피곤해져서 그냥 집에 가버리고 싶었으나 내가 여기까지 온 목적인 회의에 참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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