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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제주도에서 골프치다가 비바람으로 일찍 철수하고 공항으로 향하노라면 제주시 부근부터는 비는 커녕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경험들이 다들 있으실 것이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에도 가장 골프치기 좋은 입지로 꼽히는 골프장이 오라 cc인데 36홀 코스이기도 해서 늘 붐빈다. 코스의 수준이나 관리상태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선호하는 곳은 아닌데 무엇보다 뭍에서는 흔한 수준의 (다시 말해서 제주도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코스라서 그렇다. 페어웨이 양측으로는 키작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고,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고 내린다. 나는 몇년전까지 동/서 코스의 조합으로만 수차례 라운드해봤는데 오라 cc에는 18홀 원웨이로 진행되는 남코스도 있다. 양쪽 코스가 모두 연덕춘 씨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남코스가 더 길고 넓다고 (내가 싫어하던 스타일) 한다. 그리고 몇년전부터는 골프존카운티에서 운영을 한다.
남코스 1번부터 시작하는 우리 팀에는 내가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부터 이끌어주신 은사님과 후배가 있었으니 잔뜩 긴장한 티샷이었다. 생각해보니 수십년을 모셔온, 존경하는 스승이신데 같이 골프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종 평일에도 오전 내내 연락두절이다가 늦게서야 (벌겋게 탄 얼굴로) 나타나서는 업무에 대한 따끔한 질책을 하시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골프치고 출근하신 것이 분명하지만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요즘에 내가 그런 생활을 하니까 아하 그랬던 것이로구나 깨달았을 뿐이다. 아무튼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지만 스승님은 여전히 유쾌하시고 편안한 동반자였다. 호쾌하게 티샷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진작에 자주 모실 걸 했지만 이미 나이가 드셔서 더위에 힘들어하신다. 한편, 내가 머리를 올려주다시피 했던 후배도 함께였으니 가족으로 치자면 3대가 함께하는 라운드였다.
과연 넓고 긴 페어웨이인데 이러면 공략은 단순하다. 티샷은 살살, 어프로치는 과감하게 한다. 티박스에서 핸디캡이 다인 코스라서 죽지만 않으면 열린 시야에서 그린을 바라볼 수가 있어서 그렇다. 남들이 7번을 잡을 때 나는 하이브리드를 꺼내들더라도 결국은 그린 주변에서 스코어가 결정나는 것이 아마추어 골프이고, 숏게임과 퍼팅에서는 여간해서 점수를 까먹지 않으니까. 요즘 드라이버가 잘 맞고있기에 욕심내어 힘껏 휘두르는데 과연 페어웨이가 넓어서 여간해서는 공이 나가지 않았다. 오르막에 블라인드 홀도 종종 나오는 코스지만 부담스러움은 티박스에서만 그렇게 보일뿐 막상 나가보면 긴 세컨샷이 남는다. 그린에서는 확실하게 한라산 브레이크를 느껴볼 수 있었다. 좌우의 경사는 물론이고 분명 오르막처럼 보이는데 내리막이라고 한다. 퍼팅은 감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본대로 굴러주지 않으면 당황하고 위축된다.
골프존카운티 오라의 남코스는 확실히 동/서 코스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날 5팀이나 되어서 일부는 서코스로 시작했는데 그들보다 우리가 시간이 더 걸렸다). 날씨가 도와준 덕도 있겠지만 관리상태나 디자인이나 다 마음에 들었다. 내가 꼽는 최고의 홀은 450미터 파 5인 12번이었는데 산과 저멀리 바다, 뒤로는 한라산이 장관인데다가 이 홀에서만큼은 타겟골프다 생각하고 쳐야한다. 원웨이 진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18번도 길지만 내리막인 파 5 홀인데 티샷이 잘 맞았어도 무리한 투온보다는 레이업해서 버디를 노려야하는 디자인이라 참 재미있게 쳤다는 기분으로 라운드를 마치게 해주었다. 공항에서 가까운 덕에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고서 운동을 했고, 끝나고 점심까지 먹고도 느긋하게 귀가할 수 있었던 것도 오라에서나 가능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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