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카이72는 (회원제 정규홀이 제대로 된 골프장이고 퍼블릭은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그냥 연습삼아 가는 곳이라는 식의) 우리나라 퍼블릭 골프장의 개념을 확 바꿔놓은 원조인데 영종도 인천공항 부근의 매립지에 네 개의 18홀 코스 (그래서 72홀)로 조성된 곳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코스를 다 좋아했지만 강남쪽에서 가기에는 사실 좀 멀고, 주변에 이런저런 골프장들이 많이 생겨서 메리트는 예전에 비해 떨어진다. 그래도 어디 해외에 출장이나 회의로 나가게 되면 비행기 시간하고 잘만 맞춰서 오전에 운동하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서 곯아떨어질 수 있고, 아니면 오전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찌뿌드한 몸을 풀고 귀가할 수도 있어서 좋다 (물론 동반자를 두세명 구해야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골프의 가장 큰 난관). 퍼블릭 골프장인데 가격은 회원제 못지않게 받는다는 비난을 무마하고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던 곳인데 (예를 들어 코스 중간중간의 아이스크림이나 붕어빵 등) 이제 그러한 서비스는 우리나라 대다수 골프장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몇년전에 반환소송이니 뭐니 하며 땅주인인 공항공사와 스카이72 사이의 분쟁이 있던 시절이 마지막으로 가본 때였는데 이제 원더클럽 클럽72로 바뀐 다음에 첫 방문이다. 단수니 단전이니, 양측에서 내건 현수막 등으로 어수선했던 시절에도 골프장 내부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평온해보이긴 했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처음 이 골프장이 문을 열던 당시에 비싼 가격을 받는 이유가 십몇년인가 운영하고나면 부지를 인천공항에 반환해야해서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계약이 끝나도 못돌려준다 그러는 모습이 좀 추잡하게 보였다. 바다코스의 클래식, 레이크, 오션하고는 좀 떨어져있어서 클럽하우스도 따로 쓰는 하늘코스는 클럽72의 코스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곳이며, 나중에 활주로로 반환되면 여기만 남을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원더클럽으로 운영자가 바뀌면서 이상한 계약조건으로 부킹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고 하던데 마침 누가 여기를 잡았다며 연락해와서 만사를 제쳐두고 간다.
오랜만에 갔더니 뷔페식사가 (어디 함바집 수준의 음식이었지만) 무료였고, 커피까지도 마음껏 가져가게 해놓았다. 라커나 화장실은 전혀 관리가 안되었던지 좀 낡았다. 하늘코스를 설계한 노준택 씨는 최근 우리나라의 고급 코스들을 도맡다시피 디자인하던데 여기가 그의 초기작일 것이다. 그가 만든 골프장들을 거의 모두 플레이해본 입장에서 감히 평가하자면, 플레이어를 압도하게 아름다운 코스에 실제로 어렵기도 하다. 십수년간 열번도 넘게 하늘코스를 쳐봤으나 한번도 70대를 쳐본 적이 없었으니 내게는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아무튼 2024년에 다시 하늘코스를 찾았고, 이제 코스를 좀 이해했으니 예전보다는 좀 잘 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는데 이전의 경험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벤트그라스 페어웨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라는 (관리의 문제이긴 한데 적어도 나인브릿지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것을 깨달았다.
이날 우리는 10번부터 시작했다. 하늘코스에는 파 3 홀들을 비롯하여 정말 멋진 홀들이 많지만, 저멀리 인천대교가 내려다보이는 11번도 사진빨이 끝내주지만, 라운드를 끝맺는 마지막 두 홀이 진짜배기다. 해저드 연못을 건너는 티샷에 이어 더 커다란 해저드를 왼쪽에 끼고 세컨샷을 해야하는 17번 홀은 명실상부한 클라이막스다. 티샷을 좀 넓은 쪽인 왼쪽으로 겨냥하자면 세컨샷이 부담스럽고, 그린 방향으로 공격하자니 우측의 벙커와 암벽이 끔찍하다. 타이틀리스트 옷광고를 찍어서 눈에 익숙한 이 홀에서는 보기만 해도 잘하는 거다. 쟁쟁한 프로가 와도 투온은 못할 것 같은, 이어지는 18번 홀은 스코어를 포기하고 미스샷에도 허허 웃음이 지어지는 롱홀이다. 그린은 폭염에 군데군데 잔디가 타죽어서 보기에는 별로였으나 (하늘코스의 명성답게) 여전히 빨랐다. 오히려 페어웨이 잔디상태가 아쉬웠다. 이 시점에서 클럽72를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예전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다다음주에 KPGA 대회가 열릴 예정이라니 살짝 걱정도 된다. 결론적으로 이날도 싱글은 물건너갔고, 후반에 분발하여 버디 2개로 간신히 80대 타수를 기록. 코스보다는 더위와 싸웠으니 체력만 좋아지면 언젠가는 하늘코스를 정복하겠다 싶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그럴 가능성이 점점 떨어져간다.
예전에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이 오션코스에서 열렸고, 여기 하늘코스에서는 BMW 대회를 했었다. 그늘집에서 오래전 알고지냈던 지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오션코스 매니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하늘코스에 어쩐 일입니까 물어보니 거기는 요즘 완전히 망가져서 발길을 끊었다는 대답이었다. 바다코스의 3개 코스는 여전히 비싸던데 새롭게 운영을 맡은 원더클럽 (예전의 KMH 레저)은 신라 cc등을 나름 잘 관리하고있다고 생각했기에 좀 의외였다 (그래서 한번 직접 가봐야겠다 생각함). 물론 고급 회원제 코스에서 비회원으로 운동하거나 잘 관리되는 퍼블릭에서는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수요를 생각하면 서울에서 가까운 골프장도 비쌀만 하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핸디캡이니까... 그래도 한국에서의 골프는 부담스럽다. 코로나 이후에 많이 비싸졌다지만 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폭염경보가 내린 오후라던가, 눈이 쌓인 추운 겨울에도 선심쓰듯이 그린피를 조금 깎아주는 우리네 골프장은 앞으로도 계속 잘나갈 수 있을까.
'국내 골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힐데스하임 (0) | 2024.07.04 |
---|---|
더스타휴 (0) | 2024.06.30 |
골프존카운티 오라 (남) (0) | 2024.06.24 |
서울한양 (신코스) (1) | 2024.06.21 |
베어크리크 (베어) (1) | 2024.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