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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니 단전이니, 양측에서 내건 현수막 등으로 어수선해도 골프장 내부로 들어오니 모든 것이 평온해보였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처음 이 골프장이 문을 열던 당시에 비싼 가격을 받는 이유가 십몇년인가 운영하고나면 부지를 인천공항에 반환해야해서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이제와서 못돌려준다 저러는 모습이 좀 우습게만 보인다. 바다코스의 클래식레이크, 오션하고는 좀 떨어져있어서 클럽하우스도 따로 쓰는 하늘코스는 스카이 72의 코스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며, 활주로로 반환되면 여기만 남을 예정이라고 한다. 요금은 오션코스와 같지만 벤트그라스 페어웨이에다가 공항가는 고속도로 옆이라서 그 옆을 지나가면서 늘 공치고싶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골프장이다. 하늘과 레이크 코스는 노준택 씨가 설계했는데 Tom Peck 설계인 오션코스보다도 더 어려웠던 기억이다. 이번이 거의 열번째 방문인가 그럴 것인데 한번도 70대를 쳐본 적이 없었으니 하늘코스와 나 사이에는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아무튼 2021년에 다시 하늘코스를 찾았는데 이제 코스를 좀 이해했으니 예전보다는 좀 잘 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4월에 왔다가 비바람에 취소하고 돌아간 기억이 있어서 폭염 아래의 스카이 72를 다시 겪어보고싶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전의 경험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벤트그라스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라는 (관리의 문제이긴 한데 적어도 나인브릿지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것을 깨달았다. 하늘코스에는 파 3 홀들을 비롯하여 정말 멋진 홀들이 많지만 라운드를 끝맺는 마지막 두 홀이 진짜배기다. 해저드 연못을 건너는 티샷에 이어 더 커다란 해저드를 왼쪽에 끼고 세컨샷을 해야하는 17번 홀은 명실상부한 클라이막스다. 티샷을 좀 넓은 쪽인 왼쪽으로 겨냥하자면 세컨샷이 부담스럽고, 그린 방향으로 공격하자니 우측의 벙커와 암벽이 끔찍하다. 타이틀리스트 옷광고를 찍어서 눈에 익숙한 이 홀에서는 보기만 해도 잘하는 거다. 쟁쟁한 프로가 와도 투온은 못할 것 같은, 이어지는 18번 홀은 스코어를 포기하고 미스샷에도 허허 웃음이 지어지는 롱홀이다. 그린은 폭염에 군데군데 잔디가 타죽어서 보기에는 별로였지만 (하늘코스의 명성답게) 여전히 빨랐다. 오히려 페어웨이 잔디상태가 아쉬웠다. 이 시점에서 스카이 72를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예전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비싼 그린피는 그대로이니 조금 아쉽다. 결론적으로 이날도 싱글은 어려운듯 싶었으나 후반에 분발하여 버디 3개로 간신히 80대 초반을 기록. 코스보다는 더위와 싸웠으니 체력만 좋아지면 언젠가는 하늘코스를 정복하겠다 싶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그럴 리가 없다.

스카이72는 (회원제 정규홀이 제대로 된 골프장이고 퍼블릭은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그냥 연습삼아 가는 곳이라는 식의) 우리나라 퍼블릭 골프장의 개념을 확 바꿔놓은 원조인데 영종도 인천공항 부근의 매립지에 네 개의 코스 (그래서 72홀)로 조성된 곳. 개인적으로 네 코스 모두 맘에 들지만 강남쪽에서 가기에는 사실 좀 멀고, 주변에 이런저런 골프장들이 많이 생겨서 메리트는 예전에 비해 떨어진다. 그래도 어디 해외에 학회나 회의로 나가게 되면 비행기 시간하고 잘만 맞추면 오전에 운동하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서 곯아떨어질 수 있고, 아니면 오전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찌뿌드한 몸을 풀고 귀가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동반자를 두세명 구해야한다는 것이 늘 문제긴 하다). 퍼블릭 골프장인데 가격은 회원제 못지않게 받는다는 비난을 무마하고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는 곳인데 (예를 들어 코스 중간중간의,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냉차, 겨울에는 커피, 붕어빵 등의 서비스) 이제 그러한 서비스는 우리나라 골프장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종종 큰 대회를 개최하기에 관리도 열심이었다. 예전에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이 오션코스에서 열렸고, 여기 하늘코스에서는 BMW 대회를 했었다. 나오면서 보니 일요일 오전의 라운드에 나혼자 지불한 돈은 (아침식사까지) 이것저것 다해서 사십만원이 넘는다. 여기가 대한민국이고, 스카이 72라면 이제 좀 무뎌져서 그러려니 한다 (운영권이 신라 cc를 운영하는 KMH 레저로 넘어가면 더 비싸질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던데 도대체 여기서 가격이 더 올라갈 수가 있을까?). 물론 고급 회원제 코스에서 비회원으로 운동하거나 잘 관리되는 퍼블릭에서는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서울에서 가까운 골프장도 비쌀만 하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핸디캡이니까... 그래도 한국에서의 골프는 부담스럽다. 코로나 이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폭염경보가 내린 오후라던가, 눈이 쌓인 추운 겨울에도 선심쓰듯이 그린피를 조금 깎아주는 우리네 골프장은 앞으로도 계속 잘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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