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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의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벨라스톤 컨트리클럽은 2011년에 퍼블릭으로 개장한 18홀 골프장으로 당시 국내에서는 최저비용, 최단시간에 만든 코스라고 소개되었다. 내 생각에는 대충 만들어서 돈이나 벌자 생각이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누가 설계했는지도 찾을 길이 없다 (구글링을 해보면 류창현 씨라는 분이 벨라스톤의 레이아웃 설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아무튼 서울에서 좀 멀어서 그런지 싼 맛에 몇차례 갔던 곳이고, 그러나 코스만큼은 관리상태나 경치로나 불만이었던 적은 없었다. 제2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입지인데 최근 몇번의 라운드가 비로 취소되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날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평일의 골프는 어떤 코스에서라도 즐거운 법이다. 골프장에서의 최악도 직장에서 최고의 날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 여기는 이름 그대로 벨라/스톤 코스라서 우리도 벨라 코스부터 도는데 알고보니 스톤 1번이 첫 홀이다 (따라서 벨라 첫번째가 10번 홀임). 뭐, 상관은 없는데 벨라 코스가 좀 아기자기하고, 스톤 코스는 좁고 어렵다니까 벨라를 먼저 도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다 비슷비슷한 난이도였는데 바람이 좀 불었던 이날은 희안하게도 내리막 홀들은 맞바람, 오르막 홀들은 뒷바람이었다. 그리고 티박스에서 물을 넘어가게 만든 홀들이 많아 (어려워지긴 하지만) 가뜩이나 깊은 산속에서의 경치를 더 멋지게 해준다. 내 경험상 벨라스톤의 시그너처 홀은 스톤 6번이었는데 해저드를 넘어 오르막 티샷을 해놓으면 거기서부터 롱아이언이나 우드로 물을 한번 더 건너가야 한다. 투온은 커녕 쓰리온도 쉽지 않을 디자인이어도 양측의 연못과 숲이 멀리까지 와서 골프치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스톤 코스의 후반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음에 오면 스톤/벨라의 순서가 낫겠다. 벨라에는 없던, 화이트티에서 400 미터가 넘는 파 4 홀들이 (물론 티박스 배치에 따라 매번 달라지기는 하겠으나) 스톤 코스에는 있다. 경치가 나쁠 수가 없는 입지라서 파 3 홀들의 티박스에 매트를 깔아놓은 것을 빼면 흠잡을 것 없이 평균이상 하는 코스. 그리고 이 골프장의 티박스 매트에는 티가 들어갈 수 있게 미리 구멍을 송송 뚫어놓았는데 왼손잡이를 고려하여 양측에 모두 구멍이 있었으니 이렇게 (그나마) 왼손잡이 골퍼를 생각해주는 곳은 처음 보았다.
골프가 안되는 만가지 이유 어쩌고 얘기들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티 (tee)가 그중 하나다. 초보때부터 소위 말하는 스프링 티나 미리 땅에 꼽힐 깊이가 정해진 티를 써오다보니까 거기에만 익숙해져서 일반 나무로 된 티는 공의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어서 뭔가 불안해하곤 했다. 이게 뭐가 문제냐하면, 스프링티가 라운드 도중에 망가지거나 잃어버리면 이후의 티샷은 다 망가져버리는 수가 있었다. 아무튼 이제는 그냥 나무티나 아무거라도 꼽아서 쓰는 경지에 도달했는데 이렇게 나무로 된 티 (영어로는 티펙, tee peg이라고 한다)를 처음 발명한 이가 미국의 치과의사였던 George Franklin Grant 박사다. 이 아저씨는 흑인 최초로 하바드 (치과대학) 교수가 된 사람이고, 보스턴 인근의 William J. Devine at Franklin Park 골프장 명칭에 나오는 "Franklin"이다. 어딘가 잡지에서 지금과 같은 티는 미국의 치과의사인 William Lowell이다 어쩌고 기사를 써놨던데 엄밀히 말하자면 로웰 박사는 나무티를 대중화시킨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프랭클린 그랜트가 처음 나무로 만든 티펙의 특허를 얻은 해가 1899년이었고, 티의 상단을 평평하게 만들어서 공이 잘 서도록 개량한 로웰의 특허가 1925년에 나왔다. 골프티 얘기하다가 예전에 보스턴에 살면서 지겹도록 골프치던 시절이 떠올라 잠깐 썰을 풀었는데 (비록 지금은 갈 여건이 안되지만) 조만간 다시 그쪽 동네를 방문해서 추억을 되씹어보고 싶어졌다.